버틀란드 러셀은 평화운동가로도 유명하다. 이런 그가 50년대 초 일종의 선제공격론을 주창하고 나섰다. 소련이 핵 보유국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전세계가 힘을 모아 소련을 무장해제 시키자는 것이다.
1964년 여름 당시 존슨 미 행정부는 모종의 비밀계획에 착수했다. 중국이 원자탄 폭발 실험에 들어가자 바로 수립된 계획으로 선제공격을 통해 중국의 핵 시설을 폭격하는 내용이다.
핵무기 사용도 고려됐다. 문제는 소련의 반응이었다. 존슨의 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가 소련의 의향을 탐색했다. 반응은 네거티브. 존슨 안보팀은 심사숙고 끝에 그 계획을 보류했다. 위험하고 또 선제공격은 ‘미국적이지 못하다’는 다소 모호한 이유에서다.
1969년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긴장국면을 맞게 됐다. 이른바 중·소 분쟁이다. 이번에는 모스크바가 워싱턴에 접근했다. 중국의 핵 시설을 공격할 의사를 내비치며 미국의 반응을 떠본 것. 워싱턴은 ‘노’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냈다. 중국은 결국 핵 보유국이 됐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남쪽으로 10여분 정도 달리면 미 전략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이번 주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의가 열린다. 소형 핵무기 개발을 골자로 하는 차세대 핵무기 정책에 대한 총괄적 회의다.
이 회의에서 특히 심도 있게 다루어지는 아젠다는 고강도 지하 목표물 파괴용 핵폭탄 개발이다. 벙커 버스터로 불리는 이 무기는 지하에 숨겨져 있는 대량살상무기와 군사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전 세계 70여개 국가 1,400여곳에 지하 기지가 건설돼 지휘부 벙커 및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말하자면 불에는 불로 대항한다는 게 미국의 차세대 핵무기 정책의 모토로, 적의 대량살상무기를 분쇄하는 가장 효과적 무기는 대량살상무기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개념이다.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한다는 착상 때문이다. 그 개념에 대한 시비는 그렇다고 치고 이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뭔가 꽤 심각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하나는 핵 문제에 미국은 강박증세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고 또 현재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강박증세는 핵 확산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강대국의 의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핵 문제만 불거지면 5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제 공격론이 계속 논란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다른 시사는 핵전쟁의 위험이 냉전시대보다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미국 측 판단이다. 북한 등 불량국가의 핵 위협을 명백하고 현실적인 위험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공식 논평에서도 그런 시각이 드러난다. “미국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적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신무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주요 군사시설을 거의 대부분 지하에 은닉하고 또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는 북한이 ‘다양한 형태의 신무기’의 ‘넘버 1 타겟’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마침내 응했다. 회담을 수락하기까지 그 과정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의 역할이 컸다. 부시의 외교적 승리다. 아니, 북한측의 시간 벌기 작전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북한 핵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마지막 기회다.” 뒤집으면 위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피엔딩이 아니면 파국적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의 서울 연설도 그렇다. 김정일을 41번이나 직접 거론하면서 40여만의 무고한 생명이 수용소에서 죽어간 ‘지옥의 악몽’ 같은 나라에서 홀로 온갖 사치에 탐닉하고 있는 비인간적 독재자로 묘사했다.
그 발언 자체가 미 행정부의 계산된 메시지라는 풀이다. 빛 가운데 나오지 않을 때 남은 방법은 결국 체제 전복이라는 준 최후 통첩성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에게도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편인지 저 편인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뒤이어 나오는 한반도 시나리오는 하나같이 끔찍한 이야기들이다. 선제공격 불가피론, 제2의 한국전쟁론 등등.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북한의 핵무장을 미국은 결국 용인할 것인가. ‘아니다’가 정답 같다. 소련의 견제도 없는 상황이니까. 어떤 방법을 동원할지, 문제는 거기 있는 것 같다.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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