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유럽의 소국에 불과하지만 영국은 한 때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던 대제국이었다. 이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북미주에서 인도, 중국에서 호주, 중동과 아프리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땅을 지배할 수 있게 됐느냐는 큰 미스터리의 하 나다.
학자들은 영국이 세계 무대에 강자로 ‘신고’한 사건을 1702년부터 1714년 간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꼽는다. 이 긴 싸움에서 영국은 숙적 프랑스를 꺾고 유럽의 패자로 등장했다. 그 후 1756~1763년 간 계속된 프랑스와의 7년 전쟁, 1815년 워털루전투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한번도 프랑스에 져 본 일이 없다.
당시 프랑스는 인구 1,700만으로 영국(600만)의 3배에 달했고 국토는 2배가 넓었다. ‘태양 왕’으로 불린 루이 14세는 전형적인 절대 군주로 마음껏 세금을 거둬 쓰고 싶은데 쓸 수 있었다. 반면 명예 혁명으로 등극한 영국의 윌리엄 왕은 사사건건 돈을 얻어 쓰는 데 자기를 왕좌에 앉힌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윌리엄 왕은 군자금을 구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 14%의 이자를 주고 상공인과 지주들로부터 돈을 빌렸다. 프랑스와의 전쟁이 끝나거나 채권자가 사망할 때까지 이자를 지급하며 원금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한다는 조건이었다. 영국민들은 앞다퉈 돈을 내놨을 뿐 아니라 전쟁에 이기기 위해 한데 뭉쳤다.
반면 한없는 루이의 수탈에 지친 프랑스 인들은 돈을 빼돌리기에 급급했고 전쟁의 승패에도 덤덤했다. 이기건 지건 전리품은 왕의 몫으로 돌아가고 자신들의 삶에는 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객관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군자금과 사기에서 뒤진 프랑스군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그나 카르타이래 근대 영국의 특징은 왕이 세금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는 점이다. 쌓아놓은 재산을 왕의 말 한마디로 가져갈 수 있는 나라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머리를 짜내고 땀흘리는 것보다 왕 곁에 다가가 아양을 떠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을 즐기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재산권 보호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기술 혁신도 자본 축적도 ‘내가 번 것은 내 것’이라는 법적 보호 망이 없는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지금 전 세계에서 재산권을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곳은 북한이다. 수십 년에 걸친 ‘주체’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 개인숭배, 반미주의에 쪄든 북한 주민들에게는 재산권 보호와 영리 추구, 개인의 창의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진정한 산업화가 가능하려면 우선 이런 것부터 사회적 문화적 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야 한다.
그러나 경제 개혁에 대한 김정일의 립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허용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게 될 경우 김정일 체제의 정신적 버팀목인 낡은 이념들과의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껏 추구해온 나진 선봉이나 신의주, 금강산은 모두 북한 사회와는 격리된 지역에 거미줄을 쳐놓고 외부 자금의 단물을 빨아 정권 연장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북한에 돈을 들고 가 재미 본 투자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한국 재벌 중 가장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추진해 오던 정몽헌 현대 아산 회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이유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대북 사업이 제대로 안 돼 쌓인 자금난에다 대북 송금과 관련, 계속되고 있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지친 탓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시신은 화장 해 금강 산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다.
지난 주 할리웃 보울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조수미도 앙코르 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금강산과 북한은 한 국민들에게 아련한 향수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가 존속하는 한 금강산 관광 특구도 개선 공단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뒷마당 한 귀퉁이에 차려 놓은 엉터리 꽃동산에 불과하다. 정 회장의 죽음이 북한 체제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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