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코우’(혹은 크라코프)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 출신이다. 둘째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야길로니안 대학이 크라코우에 있다. 셋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이 도시 교외에 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야길로니안 대학 졸업생인데다 교수까지 역임했으며 크라코우 대주교로 있다가 교황에 선출되었기 때문에 이곳 어디를 가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교황이 크라코우 사람들만 비서로 쓴다고 하여 신문 가십에 오른 적도 있다. 그는 크라코우 위성도시인 바도비체에서 태어났다.
폴란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은 가톨릭과 노조이며 바오로 2세와 바웬사라는 이름이 이를 대변해 준다. 이 두 단체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누구도 나라를 통치할 수 없다. 스페인도 가톨릭 국가이지만 폴란드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스페인의 가톨릭은 힘있는 사람 쪽에 붙어 독재정권을 눈감아 왔지만 폴란드의 가톨릭은 레지스탕스의 본산지로 나치와 공산주의에 줄기차게 대항해 왔다. 가톨릭은 사실상 폴란드의 정신적 지주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눈에 뛸 정도로 성당이 많다.
폴란드는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폴란드인의 조국애는 유별나다. 쇼팽이 죽으면서 “나의 몸뚱이는 파리에, 나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을 남긴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의 심장을 담은 황금단지는 바르샤바의 체드메뉴체 거리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점령은 당했지만 끝까지 항복 문서에 사인하지 않은 나라는 폴란드밖에 없다. 지금도 축구경기에서 독일이나 러시아와 붙으면 전국이 열기로 가득 찬다.
폴란드인의 꽃 사랑은 알아줄 정도다. 프라하 관광 때 안내인 설명이 “체코 사람들이 꽃을 잘 가꾸지만 이곳 폴란드 대사관 정원을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비엔나에서 기차를 타고 오노라면 오스트리아 농촌은 부유해 보이고, 체코 농촌은 시골 냄새가 물씬하고, 폴란드 농촌은 빈민들이 사는 것처럼 집 모양이 뚜렷이 구별된다. 그런데 폴란드 농촌은 집은 낡았어도 창가나 뜰에 꽃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연애할 때 꽃으로 말한다고 한다.
폴란드 농촌에 재미있는 전통이 한가지 있다. 이른바 ‘블루 하우스’다. 아우슈비츠에 가려면 농촌을 1시간 정도 달려야 하는데 파란 페인트를 칠해 놓은 집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다른 집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좀 어색해 보여 안내양에게 “저 파란은 집은 뭐냐?”고 물어 보니까 웃기만 한다. 다시 물으니까 가르쳐 주는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집 못간 여자가 이 집에 있으니 어떤 남자든지 들어와 선을 보라는 표시”라는 것이다. “연령에 제한 없느냐, 나 같은 사람도 되느냐”고 조크 했더니 “된다”고 했다. 기가 막힌 일은 운전기사가 ‘블루 하우스’ 앞에서 정말 차를 세우고는 날보고 내리라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려서 ‘블루 하우스’를 사진 찍을 수 있었다. 화보에 소개한 사진은 이처럼 어렵게 찍은 것이다.
그런데 안내양이 나중에 하는 소리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 나 같은 사람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블루 하우스’에서 선보는 여자는 꼭 그 집 딸은 아니고 50세 넘은 과부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20명이 탄 외국인 관광버스가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지녔던 우울한 기분이 일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잘 못살지만 낭만이 넘쳐흐르고,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나라.폴란드가 새삼스럽게 다시 보였다. 동구는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아 순수한 데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바오로 2세가 주교로 시무하던 마리아성당. “교황은 우리동네 사람이죠.” 시내 어디를 가나 교황사진이 걸려 있다.
가톨릭은 노조와 함께 폴랜드를 이끌어가는 2대 정신적 지주다. 야길로니안대학 캠퍼스에서 단체로 수업받으러 가는 수녀들. 크라코우는 15세기 유럽의 학문중심지였으며 특히 신학과 천체물리학 연구로 이름을 떨쳤다.
고색찬란한 크라코우 시내 전경. 1950년대를 묘사하는 영화장면 같다.
다운타운 마켓스퀘어에 있는 무명화가의 거리. 이곳에서 그림이 잘 팔리면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폴랜드의 자랑 야길로니안 대학. 1490년에 설립된 동유럽 최고 오래된 대학으로 코페르니쿠스도 학생이었다고 한다.
번화가 카페의 손님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아코디언니스트. 식당이나 카페 어디를 가도 생음악을 들을 수 있다.
크라코우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레오나드 다빈치의 ‘얼민 새끼를를 안고 있는 여인.’
“시집갈 여자 있습니다”를상징하는 블루하우스-폴랜드 농촌에서는 혼기를 넘긴 딸이 있는 집에서는 벽에 파란 페인트를를 칠해 놓는다. 누구나 들어가 선을 볼수 있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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