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이 정치적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아메리카 합중국에 경쟁하는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 가맹국 15개국은 18일 유럽헌법 초안을 정식 제출하고 내년에 폴란드 등 동유럽 10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모두 25개국으로 구성된 연합체를 형성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인구 4억6,000만으로 미국보다 2억 많고 미국과 비슷한 경제력을 보유하는 수퍼파워로 등장하게 된다. 유럽 12개국은 이미 99년 이래로 ‘유로’라는 단일 화폐를 창설, 국제시장에서 달러와 경쟁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경제적인 통합에 이어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국제질서에 큰 견제세력으로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이른바 유럽 합중국이 미국을 능가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해 유럽 합중국은 실현이 어렵고 미국의 세계 주도권은 상당기간 갈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경제적 통합이 어렵다. 유럽 12개국이 도입한 단일통화 유로는 지금까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5년 전만 해도 독일인이 마르크를 리라로 바꿔 이탈리아 여행을 즐겼지만 지금은 돈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유로는 지금 각 국의 경제적 괴리를 더 가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실업률이 10%를 넘어서 경기침체에 돌입했는데 유로 가맹국의 규율에 묶여 적절한 경기부양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감세를 단행하고 금리를 더 인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EU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발이 묶여 있다. 내년에 가입할 동유럽 10개국 대부분이 농업국인데다 국민 소득이 기존의 서유럽 가맹국의 절반 수준이어서 잘사는 나라로부터 농업보조금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
독립 주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국가 간 부의 이동은 정치적 불협화음을 낳을 소지가 있다. 유럽은 19세기말에 세 번의 통화동맹을 시도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통화동맹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4개국의 라틴 통화동맹, 독일 연방 내 영주국 간의 한자동맹 등이 그것이다. 스칸디나비아 동맹과 라틴 동맹은 실패했고 한자 동맹은 성공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한 동맹은 각 국이 독립 주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겼고 한자 동맹의 성공은 영주국들이 단일 주권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통화는 단일 주권을 전제로 한다. 유로가 12개 또는 20여 개 주권국들의 단일 통화로 정착하려면 유럽이 미국처럼 하나의 주권국가가 되어야 한다.
둘째, 유럽이 50개 주의 연방국인 미국처럼 강력한 정치적 통합을 하기 어렵다. EU 가맹국들은 당초 미국처럼 대통령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약소국들의 반대로 현재처럼 6개월 임기의 의장제를 유지키로 했다. 주권국의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영국, 스페인, 동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지지하고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에 반대하는 등 극심한 분열 상이 노출된바 있다. 유럽 헌법 초안은 한 명의 외무장관을 선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EU외무장관이 회원국이 만장 일치하는 이슈에서만 입장을 표명하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할 것이다.
군대도 창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코소보 사태 등 대륙의 현안도 해결하지 못해 미군이 출병해야 하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힘든 일은 EU가 각 국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EU 조직을 유지하는데 통역 관련 비용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지만 2007년에는 2억5,0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다민족 국가로 19세기에 중부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군대를 통솔할 때 5~6개국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해야 했다. 이 제국은 독일어로만 움직이는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 의해 붕괴됐다. EU와 미국을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경험에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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