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생일
지난주는 나의 ‘생일주간’이었다.
아들이 캠핑 가고 없던 한 주 동안 거의 매일 저녁 이팀, 저팀 만나며 계속적인 축하연을 가졌다. 중년의 아줌마가 생일을 맞은 것이 무슨 축하할만한 일일까. 그저 하루 날을 잡아 선물 받고, 맛있는거 얻어먹고, 공식적으로 놀아도 되는 날이라는거지, 특별히 축하 받을 그 무엇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생일을 당하여 남편은 옷을 한 벌 사주었고, 시어머님과 언니는 돈을 주셨으며, 동생은 화장품을, 친구들은 와인을, 또 다른 친구들은 사우나에 데려가 때를 밀어주면서 슬프고 지친 나의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진짜 생일날 저녁은 남편과 함께 멜로즈 거리에 있는 프렌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봄으로써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나는 58년 개띠. 올해로 만 45세가 되었다.
1958년생은 왜 반드시 ‘오팔년 개띠’라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588’을 연상케하는 ‘58’과 ‘년’이 붙어 묘한 어감을 만들어내는데다, 8자가 붙으면 이상하게도 ‘18’과도 연결되어 점잖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한 욕설에 자주 등장되는 ‘개’라는 단어까지 희한하게 어우러져 아무튼 그리 좋은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오팔년 개띠’의 한사람으로 태어났다.
누군가는 내 사주가 오뉴월 개팔자라고 하는데, 안팎으로 정신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볼 때 늘어진 개팔자가 아니라 복중에 살아남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개팔자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보기도 한다.
우리 세대는 박지만 때문에 중3 때 갑자기 ‘뺑뺑이’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 육영수여사 서거를, 대학 3년때 박정희대통령이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가 쓰러졌으며, 다음해 광주사태를 맞은 세대. 한 가족의 흥망성쇠가 전국민의 운명과 맞물렸던 시절을 살다가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기에 나는 미국으로 이민 왔다.
그 이후 조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나도 미국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중견기자가 된 지금까지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하면서 어느 틈엔가 마흔하고도 다섯, 듣기만 해도 매력 없고 뻔뻔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젊었을 땐 40이 넘은 여자는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저렇게 늙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까 싶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건만 나라고 별수 있나. 시인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는 동안, 아니 한강도 흐르고, 어디 있는지 본 적도 없는 LA강마저 흐르는 동안, 정숙희의 세월도 흐르고 흘러 50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가네
그동안 잃은 것은 탄력, 얻은 것은 주름과 두부살뿐이지만, 그렇다면 나는 슬픈가?
아니, 아니, 그렇지 않다고 도래질해본다. 펑퍼짐한 몸매가 볼품없다해도, 얼굴에 기미가 좀 끼었기로서니, 나는 격동의 젊은 세월속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젊어서 설익고 미숙했던 시간들, 후회스런 순간들을 또다시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류시화의 시구절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당연히 남아 있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았더라면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되었을만큼은 성숙해졌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는 모두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몰랐기 때문에 이처럼 찬란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 늙어가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외쳐본다. 나는 중년이 좋다. 나는 아줌마가 좋다. 나는 마흔다섯살이 좋다. 그리고 나는 오십살도, 육십살도, 일흔살도, 아니 살아있는 동안 어떤 나이를 맞아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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