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자녀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한다. 올해에도 벌써 두 집이 혼례를 치렀고 또 한 집이 곧 다가올 경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처음 한 친구가 청첩장을 보내왔을 때 아내와 나는 “아니, 벌써?” 하다가”하긴, 이제는 시집 장가 보낼 때가 되긴 되었지”하며 고개를 끄떡였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인사차 방문 오는 날이면 온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 한 다음 맞아들인다. 그리고는 남자는 어떻게 해야하고 여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신의 결혼 경험담을 들려준다. 어떤 예비 부부들은 고개를 끄떡 거리기도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웃기도 하지만 열이면 아홉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이해도 못할뿐더러 어서 빨리 나가서 단 둘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역력하다. 그럴 때면 내가 슬그머니 끼어 들어 어서어서 아이들을 보낸다.
아내가 하도 우리 이야기를 해주어서 우리 집을 다녀간 신혼 부부들은 모두 우리 결혼 이야기를 나 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내가 그네들 집을 방문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럴 때 아저씨는 이렇게 하셨다는데 왜 그러셨어요?”라고 묻거나 “우린 이렇게 하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는데요.”하며 농담섞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아줌마 예긴 다 월간 잡지에서 읽은 거란다. 우리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월간잡지 인생 상담난을 읽어 보라.”고 떠넘긴다. 어떤 부부는 진가민가하고 어떤 부부는 절대로 안 믿는다.
나는 아내더러 다시는 우리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는 우리 이야기보다 더 생생하고 더 따끈따끈하게 살아 숨쉬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디 있느냐고 막무가내다.
“생생하고 따끈따끈하고 살아 숨쉬는 감동적인 스토리 좋아하네.”하고 한 마디 받았다가는 난리가 난다.
그러면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란 말이냐, 노사연의 노래로 감동시킨 건 연극이 었느냐, 못 마시는 포도주 한잔 건네주면서(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의 주량은 소주 한 병이었다.) 오늘밤 러브 샷속에 우리의 사랑을 운운 한 것은 사기였느냐, 등등 쏟아 부으면서 나오지 않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내를 달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어김없이 용돈을 뜯긴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가 어느 틈에 신혼 부부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이다. 그런 아내가 요사이는 말이 적어졌다. 예비 부부들이 와도 전처럼 장시간 붙잡고 이야길 하지 않는다. 잘된 일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주위에서 아이들이 결혼을 할 때마다 시무룩해 보인다.
하루는 큰 맘먹고 소주 한 병에 회 한 접시를 사 갖고 들어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랬다고 입 다물지 말고 우리 사랑 이야기 고주알 메주알 다 들려주어도 좋다고. 젊은 아이들이 주간지 월간지 뒤적이는 것 보다 당신 이야기 듣는 것이 백 번 낫다고. 아내가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럼 왜?
소주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들이킨 아내(이럴 때 나는 긴장한다.)가 취한 듯 안취한 듯 아리송한 눈(그 눈에 나는 반했었다.)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결혼하지?” 그랬었구나.
이제 아내는 친구들의 자녀들이 하나 씩 둘 씩 결혼하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녀석들이 예쁘고 고운 며느리와 잘생기고 듬직한 사위를 데려와 각자의 부모님에게 인사시키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는 아직 여자 친구 하나 없는 모양이다. 장가갈 생각은 고사하고 여자 친구 사귈 생각도 안하고 있다. 허구한 날 영화 촬영한다고 학교에 박혀있고 집에서는 컴퓨터를 끼고 산다.
요사이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여자친구 좀 데려오라고 밖으로 내몰면 씨-익-웃으면서 “밖에 나가면 여자친구가 있나요. 안에 있어도 때 되면 다 생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다.
다음달 또 아들 장가 보내는 친구 집을 도와주고 돌아온 다음날 아침, 아내는 큰 녀석이 며느리와 함께 손주를 안고 들어서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애인도 없는 아들을 두고 손자 꿈이라니, 내 원 참 ! 누구 결혼 적령기의 참 한 따님 두신 분 계시면 연락 주십시오. 이다음 결혼 생활 수십 년 지난 뒤에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박박 우길 줄 아는 따님, 우리의 결혼은 지금도 생생하고 따끈따끈하고,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숨쉬는 감동적인 스토리라고 말 할 수 있는 따님, 그런 따님을 어서 빨리 시집 보내고 싶어 손주 꿈부터 꾸고 계신 분 계시면 꼭 잊지 말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윤홍
약 력
▲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당선
▲ 재외동포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 미주 수필가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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