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벽에는 ‘잠자는 아가, 책보는 아빠, 기도하는 엄마에게 하늘의 은총이 있기를’ 하는 글이 액자에 끼워져 붙어있는지 오래이다.
1985년에 유학생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아이를 낳았으니 그 당시 우리가족에겐 적당한 안부였으리라. 친정 아버지가 1986년도 새해 연하장으로 보낸 것이다. 화선지에 아버지의 붓글씨로 쓴 것이어서 액자에 끼워 둔 채 17년이 되었다. 나는 그걸 우리 집의 가훈 마냥 여기고 살았다. 이제는 그 내용이 바뀌어 ‘잠자는 엄마, 책보는 아들, 기도하는 아빠’가 되어야 하나 아버지가 소천 하고 안 계시니 그냥 두고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보고 있다.
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그렇게 만들어 보내셨고 틈틈이 편지도 보내주셨다. 얇은 습자지에 거미 같은 글씨로 써서 보낸 편지를 여러 통 간직하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청춘극장’을 쓴 김내성 씨와 ‘실락원’등을 쓴 정비석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계실 때 기고작가 이기도 해서 가끔 당구장이나 대포집을 동행하시곤 했다고 한다.
김내성씨는 젊은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메모를 철저히 하셨다고 한다. 자기세대와 다른 젊은이의 대화가 글쓰는데 필요하다며... 또한 정비석 씨는 글을 쓰고 나서 아내나 아이들에게 꼭 소리내어 읽어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 가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잘 나가는 작가였던 두 분은 철저한 작가정신이 있었기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셨다. 아버지가 그 편지를 통해 내게 글쓰는 이의 자세를 알려 주신 것이다.
새로 집을 이사했을 땐 ‘좋은 이웃이 되어라’는 편지도 주셨고,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을 땐 ‘아버지도 정들었던 신문사를 옮길 때 너처럼 서운했었다’고 위로의 편지를 보내 주시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출판하지 않은 내가 글쓰는 이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국제 펜클럽의 회원이 되었을 때는, 글쓰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열심히 쓰는 것이지 회원이 되고 안 되고 가 아니라는 충고도 해 주셨다.
나는 정년 퇴직한 아버지가 시간이 남아돌아 내게 편지를 자주 하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편지 5번에 한번정도로 가끔 답장을 보내고 전화로 때우는 수가 많았다. 아버지의 편지는 당연한 것이고 내 답장은 마지못해 하는 짧은 것이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엔 아버지의 편지를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의 편지가 별 내용이 아니어도 아버지의 필적, 얇은 종이에 들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었다. 그래서 동생들이 아이를 낳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어있어도, 키우던 개가 새끼를 다섯이나 낳아서 온 동리에 분양했다는 이야기가 들어있어도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땐 늘 눈물이 났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주로 동생들이 아버지의 병세를 이 메일로 보낼 때 안부가 오갔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투석을 받으시게 되어 이곳 딸네 집에도 더 이상 못 오시고, 전화로만 통화하다가 돌아가시기 전 한번 가서 뵌 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정리하다가 다시 읽어본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1999년 11월 16일에 보낸 아버지의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네가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일을 돕게 되었다고 얘기를 들었다. 그 일이 바쁘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 자신의 건강에 유의하길 바란다. 바쁘고 힘겨운 이민 생활에서 자신을 살펴볼 겨를 도 없이 지내오는 사이 너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번 일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과 가정의 목표를 재 설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억지로라도 바쁜 일에서 잠시 떠나 여유 로운 마음으로 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나는 내 가족들과 나 자신까지도 돌보지 못한 채 활자에 묻혀 지내 오다보니 훌쩍 노년에 이르고 만 것이 후회 스럽다.’
실제로 아버지의 이 편지를 받고 나서 내 이민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또 나를 깨우쳐주는 아버지의 편지. 아아 아버지는 글쓰기의 스승일 뿐 아니라 죽어서도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며 내 인생의 영원한 사부이다.
8월이 되면 아들아이는 기숙사로 떠난다. 그래도 편지를 쓸 일이 없는 사이버시대. 디지털 카메라와 비디오폰으로 안부 전하기가 편리해진... 그러나 감동 없는 세월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이정아
약 력
▲‘한국수필‘등단
▲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 미주 크리스찬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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