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둔 피터 송 대위의 편지와 사진
피터 송 대위가 아버지에게 보낸 이메일
무더위속 텐트 잠, 비상식량에
질리고 힘들기도 하지만
불쌍한 이라크 어린이들 보면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2-3개월내 귀국할수 있었으면....
웨스트포인트 출신 공정대 헬기조종
교수직 제의 뿌리치고 지휘관 길
최근 화약고 폭파후 불시착 위험도
아버지
디지털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 보내기가 어렵군요. 지난번 보낸 사진은 편대장한테서 카메라를 빌려 찍었던 것입니다. 음식은 괜찮은 편입니다. MRE(비상식량)를 자주 먹는데 맛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매일 같은 것을 먹다보니 이제는 별 맛을 못 느끼겠습니다. 그러나 굶주리는 이라크 어린이들과 비교하면 저희가 먹는 음식은 진수성찬입니다. 아이들이 먹는 것을 눈으로 보고 나서 하나님에게 매일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답니다.
잠은 옥상에서 개인적으로 사온 텐트를 치고 잡니다. 낮에는 정말 덥지만 밤에는 그럭저럭 견뎌낼 만합니다. 알린(여동생)이 소형 선풍기를 보내주겠다고 하니 좀 더 시원하게 잘 수 있겠지요. 큼지막한 물탱크를 하나 찾아 샤워장을 만들었습니다. 물이 뜨뜻미지근하지만 불평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영이(부인)하고 방금 통화했습니다. 목소리가 활기 찬 것 같더군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랍니다. 내가 빨리 귀국해야 집안 일을 거들어줄 텐데… 지영이 혼자서 집안 살림을 이렇게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2~3개월 안에 귀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9월 귀국 설이 있기는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아들 피터 올림
하시엔다 하이츠에 거주하는 앨버트 송(63), 스텔라 송(56) 부부는 스테판(25), 알린(24)등 아들딸과 함께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린다.
미 101공정사단 일원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아들 피터 송 대위(29)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기를 바라는 기도로 송 대위가 올해 초 파병된 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하고 있는 가족의식이다. 전쟁은 끝났다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공격이 그치질 않고 있어서 걱정을 털어 버릴 수가 없다.
송 대위는 동부 한인타운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월넛 고등학교 재학중 육사 출신 특별활동반 교사의 영향을 받아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다.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는 성적만 우수하다고 해서 입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6피트3인치의 장신인 송 대위는 고교시절 야구, 풋볼 등 스포츠와 병원에서의 봉사활동, 교회(세리토스 장로교회) 학생회장 등 과외활동을 부지런히 한 끝에 웨스트포인트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웨스트포인트에 원서를 내기 위해서는 연방 상하원 의원의 추천서가 필수인데 의원 1명이 한해 단 5장의 추천서를 써줄 수 있기 때문에 추천서 경쟁부터 치열하다. 송 대위는 웨스트 코비나 출신 데이빗 드라이어 연방하원의원의 추천서를 받아 원서를 접수시켰고 1만2,000여명의 지원자중 10대1이 넘는 경쟁을 물리치고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1,200명의 입학생 가운데 1년 안에 200여명이 탈락했고 4년을 마치고 1997년 임관을 한 생도는 모두 899명. 송 소위는 항공병과를 지원, 앨라배마의 육군 항공학교에서 10개월의 교육을 거쳐 헬기 조종사가 됐고 다시 2개월의 고급반 과정을 마친 뒤 공격용 아파치 헬기 조종사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 송 대위는 주한 미군에 파견돼 평택에서 3년을 보내면서 서울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부인 지영씨를 만났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웨스트포인트 교수직을 두 차례나 제의 받았지만 정통 지휘관 코스를 꿈꾸는 송 대위는 이를 거절하고 지휘관 학교를 마친 뒤 켄터키의 101공정사단에 근무하다가 아파치 헬기 조종사로 이라크전에 파병된 것이다. “비행하는 것이 너무 좋다”며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면 편대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얼마전 송 대위는 저공비행으로 공격목표를 명중시켰다가 이라크군이 숨겨 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화약류가 폭발하는 바람에 구사일생의 위기를 겪었다. 사격을 가하고 빠져 나오던 헬기가 폭발로 인한 폭풍에 휩싸이는 바람에 불시착했던 것. 기체에 50여개나 되는 파편이 박히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불구하고 송 대위와 동승했던 부조종사는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부대에서는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난리를 떨었는데 정작 송 대위 본인은 담담했다고.
송 대위 부모와 스테판(25), 알린(24) 등 두 동생은 매일 아침 하시엔다의 집에서 송 대위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를 올린 뒤 집을 나서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다소 시들해진 노란 리번도 가슴에서 떨어질 날이 없다. 앨버트 송씨 부부는 지난 5월18일 테네시주에 있는 아들집에 다녀왔다. 아버지 없이 맞은 손자 매튜군의 첫돌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박덕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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