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 뒤에는 여성이 있다.”
추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 말은 ‘명품의 대명사’로 꼽히는 벤츠 자동차의 탄생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1886년 1월 29일 독일 만하임에서 칼 벤츠가 자신이 만든 세 발 자동차 특허를 등록시킨 날을 학자들은 자동차 탄생일로 잡는다. 그러나 벤츠가 자신의 힘만으로 자동차를 만든 것은 아니다.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이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그의 아내 베르타였다.
벤츠가 하던 가게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자 당시 그의 약혼녀였던 베르타는 친정 부모를 설득, 지참금을 미리 받아 위기를 모면케 했다. 우여곡절 끝에 1888년 차를 시장에 내놓고 선전을 했지만 아무도 타려는 사람이 없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마차가 있는데 왜 검증되지 않은 고철을 타느냐”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남편이 다시 파산에 직면하게 되자 베르타는 한 밤중에 남편 몰래 차를 끄집어내 14살과 15살 난 두 아들을 태우고 만하임에서 슈투트가르트 인근 포르차임까지 100km 장거리 운전을 감행했다. 새벽에 출발한 이 차는 해질 무렵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세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자 독일 전역은 흥분에 휩싸이고 차는 날개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벤츠는 자서전에서 “우리 배가 침몰하려 했을 때 내 곁에서 끝까지 나를 지켜준 것은 아내뿐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베르타는 1929년 벤츠가 사망한 후에도 오래 동안 회사의 발전을 지켜보다 1944년 95세로 숨을 거뒀다.
벤츠는 1926년 완벽주의자 엔지니어 고틀립 다임러가 세운 다임러사와 합병하면서 최근까지 ‘자동차의 왕’으로 군림해왔다. 벤츠에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다임러의 파트너가 차에 자기 딸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고 해 그렇게 됐다.
그 벤츠의 신화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의 바이블’로 불리는 J. D. 파워사 조사에 따르면 벤츠의 소비자 만족도가 일본 고급 차는 물론이고 GM이나 크라이슬러 등 미국 차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이상 차를 소유한 5만5,000명을 대상으로 2,000개 모델, 147가지 문제점에 관한 이 보고서는 렉서스가 차 100대 당 163건으로 가장 문제가 적었고 인피니티가 174건으로 두 번째, GM의 뷰익이 179건으로 세 번째라고 밝혔다. 벤츠는 318건으로 전체 평균 273건은 물론 수년 전 합병한 크라이슬러의 295건에도 뒤졌다.
물론 한번의 조사만으로 ‘벤츠 시대는 갔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벤츠사 측에서는 “이번 조사는 그 동안 결함 차량으로 밝혀진 일부 모델 때문”이라며 “이미 문제를 고쳤기 때문에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벤츠는 70년대 미국 차들이 범했던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듯 하다. 10여 년 전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이름으로 첫 고급 차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벤츠를 비롯한 유럽의 소위 ‘명차’들은 코웃음을 쳤다. “코롤라나 캠리나 만들던 솜씨로 감히 어디를 넘보느냐”는 식이었다. 그 독일 차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이제 전 세계 고급 차 시장은 일본의 놀이터로 바뀌고 있다.
어느 분야나 일등은 한번 올라서기도 어렵지만 올라선 후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선두 자리에 오래 서면 설수록 상대방을 얕보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반드시 일등보다 더 배고프고 집념에 찬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기 수련이 없이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다.
숙적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카르타고가 불타고 시민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승리의 쾌재를 부르는 대신 “언젠가는 로마도 저렇게 되겠지...”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인간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잘 나갈수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사람이 정상의 자리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을 뿐이다.
최근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인 사회에는 지난 10여 년 간의 장기 호황에 힘입어 천만장자 대열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다. 아무리 힘들게 쌓아 올린 부도 자만에 취하는 순간 새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 일본차에 밀리고 있는 벤츠가 주는 교훈이다.
민 경 훈 <편집위원>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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