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에 대한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의 방해 여부 공방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거기다 현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개혁 신당 추진의 한 축인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경성 뇌물수수 의혹’의 재판 와중에 ‘굿모닝 시티’대표로부터 4억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부정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오기 때문에 좀 전까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이 해결의 별다른 진전도 없이 쉬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햇볕정책에 관련한 거짓말과 150억 수수의혹이 그 예다.
박 전 장관은 이 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문화와 관련된 부서의 장관을 지낸 이답게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운치 있는 시구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그는 또 “협상과정에서의 모든 잘못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라고 말해서 언론 보도에 ‘김대중의 장세동’이라는 말이 잠시 비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햇볕정책으로 인해 한반도가 전쟁을 피할 수 있었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햇볕정책이 남한의 협상지위를 낮추고 주도적 역할의 가능성을 줄였다는 비판적 평가가 있다. 멀리 볼 때 역사는 햇볕정책의 공을 보다 인정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상의 명백한 거짓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박 전 장관은 북한에 거액의 돈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구체적인 액수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할 때 분명히 책임 있는 공직자로서 그리고 국민 앞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에 단돈 1달러도 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천명이 전혀 거짓으로 드러난 이후 박 전 장관은 좋은 결과를 위해 과정상의 거짓말은 가능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당시 북한에 돈을 주고서라도 햇볕정책이 추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잠시 국민에게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의 모든 잘못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말은 그래서 보기에 따라 당당한 자세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의 이런 자세의 한 배경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와 지역갈등 그리고 거대 야당의 대안 없는 일방적 비판을 볼 때 그렇게라도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 역사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공적 업무에 있어서 결과가 과정성의 거짓말을 용인하는 방패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의 거짓말이 결국은 유야 무야 되는 식은 곤란하다. 이번 경우 법적 시비를 분명히 가려 무엇이 ‘통치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합법적 기준도 정하고 용인될 수 없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법적 조처를 취함으로써 공직자가 국민을 속이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실 한국정치의 가장 발전 안 된 부분 가운데 하나가 정치인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거짓말을 해대는 것과 그 잘못을 밝히려는 국민적, 사법적 노력이 결국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우리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직자가, 그것도 주요 공직자가 공적 업무와 관련해서 공공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환경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다 알다시피, 클린턴 전 대통령과 르윈스키 사이의 스캔들이 사임공방으로까지 가게 된 것은 거짓말 때문이었다. 부적절한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클린턴의 해명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몇 년 전 지방의 한 공무원이 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목이 달아난 적이 있다. 그때 그 공무원이 “내가 높은 자리에서 거액의 돈을 받았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인데”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국가 차원의 일을 하는 높은 지위의 정치인과 공직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고서야 한국사회 전체의 공적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없다. 과정상의 거짓말이 용인된다면 모든 공직자들이 변명 만들기의 프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지지는 그가 이런 일을 처리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대통령이 정치의 중심인데 정치적 고려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벌써부터 정치판에서의 손해에 집착하는 보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판 손해에 집착해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 손해를 면할 수 없다. 근래의 지지율 하락은 그런 점에서 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1차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조경근/스탠포드대 객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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