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난 나라에서 사는 것이 편안하다. 자라나면서 몸에 익숙해졌고 추억마저 깃든 고국을 떠나 이역 땅에 옮겨가면 생활 환경이 생소하여 적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장 경제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생활을 영위하기조차 어렵게 된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다는 것을 일종의 형벌처럼 여기기도 한다. 과거에는 중죄를 지은 범인을 국외로 추방했고 지금도 혁명이나 쿠데타로 실각한 권력자들이 해외 망명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떠나기 싫어도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때는 고국을 등질 수밖에 없다.
대체로 고국의 환경이 사람 살기에 힘든 열악한 환경이 되거나 다른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난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죽은 후 로마의 지배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마 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초토화되고 유대가 멸망하게 되자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지금 미국의 골격이 된 첫 조상은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었다. 그 후 이 신대륙에는 유럽 절대주의의 정치와 경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부를 쌓으려는 이들이 쇄도했다. 그 결과 미국은 민주정치와 자유경제를 만끽하는 나라로 탄생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구한말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간도지방을 중심으로 이주현상이 심했고 일제에 나라가 망한 후 해외유랑이 심화되었다.
해방 후에는 국토가 분단된 후 북한이 공산화되자 정치적, 경제적 위기에서 탈출한 월남 행렬이 줄을 이었다. 요즘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탈북자들이 엄청난 숫자라고 한다. 자유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있는 탈북자들에게서 북한이 얼마나 생지옥이며 나라가 생지옥이 될 때 국민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탈출하는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졌다는 한국에서 해외이주 바람이 심상찮게 불고 있다. 7월 15일 한국의 무역협회가 국내 246개 수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4%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했거나 옮길 계획을 하고 있으며 이 중 71%가 3년 내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뿐 아니라 첨단산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이번 조사의 응답기업 중 57%가 4~5년 내 한국에 기업 동공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전경련은 2007년쯤 산업 동공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이 해외 이전을 추진하는 구체적 이유는 비용 절감, 노동력 확보, 해외시장 확대,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해외 이주현상이 기업 뿐 아니라 전 국민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 주목할만한 점이다.
최근에 미국 입국이 까다로워진 후 캐나다와 호주 등지의 이민이 크게 늘었고 이들 나라에도 한인들이 포화상태가 되자 동남아 이주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해외로 이주하는 이유는 노사분규와 북 핵 문제, 부정부패 등 정치불안, 열악한 교육환경 등 사회문제, 그리고 최근의 경기침체 등이다.
한 마디로 한국이 더 이상 살기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떠난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민을 가야 할만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또 사회적으로 가장 필요한 젊은 층도 이민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 지난 4월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는 20대의 50.5%, 30대의 51%가 “가능하면 이민 가겠다”고 응답했다. 기회만 있으면 보따리를 싸서 한국을 떠나겠다는 20,30대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 이다.
어떤 단체나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에서 쓸만한 사람들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위기 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이다. 한국인의 이런 이민 추세는 앞으로 북한의 준동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함께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이민은 장려할 사항 이다.
그러나 나갈 사람이 나가야 한다. 우리 같은 이민자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나라를 망쳐놓은 사람들이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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