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LA에 가면 ‘팜‘(Palm)이라는 랍스터와 스테이크 전문식당이 있다.
먹어본 곳 중 가장 맛있는 랍스터를 서브하기 때문에 항상 꿈에 그리는 식당이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큰 맘 먹어야 한번 가곤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랍스터를 시키면 금방 쪄낸 랍스터 한마리가 통째로 나오는데, 딱딱한 붉은 색 껍데기를 뜯어내고 보들보들, 따끈따끈한 흰 살을 포크로 꺼내 버터에 찍어 먹는 맛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렵다.
그런 환상적인 맛은 ‘팜‘ 레스토랑에나 가야 먹어볼 수 있는 것으로 이제껏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난 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스리지의 한 가정집에서(!), 남자(!)가, 손님을 잔뜩 청해놓고, 그 식당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지 않게 맛있는 랍스터를 척 요리해 서브한 것이다.
어찌나 놀랍고 감격스럽던지, 그런데 더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랍스터 요리가 세상의 어떤 요리보다도 쉽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저 큼직한 들통에 물을 조금 넣고 끓이다가, 살아서 버둥대는 랍스터를 집어넣고 한 30분 푹 찌면 끝! 빨갛게 익은 놈을 접시에 올려놓고, 껍데기를 부숴가며 살을 발라서 녹인 버터에 찍어먹으면 여타 다른 음식이 일체 필요 없는 것이다.
컴퓨터 엔지니어 백운천씨(44)는 몇 년전 한 일본계 미국인으로부터 이 랍스터 요리를 배운 후 여러 사람 즐겁게 해주고 있다.
부부가 함께 사람 청하기 좋아하는 탓에 자주 손님을 치르는데 각자 랍스터 한 마리면 손님도 감격, 아내도 힘 안 들고, 백씨는 대단한 요리사라도 된 듯 칭찬을 귀따갑게 듣는 것이다.
랍스터 가격이 싸지 않고, 일부러 다운타운 중국마켓까지 나가 살아있는 것을 사와야 하는 일이 다소 번거롭다면 번거롭지만, 그만큼 힘 안들이고 손님 치를 수도 없지 않은가.
너무 쉬워서 설명할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본 대로, 먹은 대로 체험담을 적어본다.
백운천씨는 먼저 속이 깊은 들통과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였다.
물의 양은 냄비 바닥에서 2~3인치 올라올 정도.
물이 끓자 생강 절인 것(sweet ginger) 약간과 양파 썬 것 약간, 그리고 간장을 약간 부었다.
모두 ‘약간’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넣었기 때문. 굳이 양을 정해 말해달라고 한다면 스윗 진저는 1/3컵 정도, 양파는 얇게 썬 링 3쪽, 간장은 물 색깔이 연한 간장색을 띨 정도로 4~5큰술 정도 넣었다.
이 상태로 10분 정도 끓이면 생강과 양파의 향이 우러나는데 이 때 랍스터를 산 채로 찜통에 넣는다.
백씨는 그날 낮에 사다가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랍스터 9마리를 한 마리씩 들통에 넣었다. 집게발을 묶고 있는 고무줄을 일일이 자르고 넣었는데, 이 과정이 조금 쉽지 않다. 허리 부분을 쥐고 가위로 고무줄을 자른 후 뜨거운 들통에 넣을 때 랍스터가 버둥대기 때문. 따라서 고무줄 채로 요리하는 사람이 많으며, 그래도 맛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버둥대는 랍스터들이 어떻게 다 들통에 들어가나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차곡차곡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뚜껑을 닫아놓고 센 불에서 한 30분 찐다.(한두 마리만 찔 때는 15~20분만 쪄도 된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 껍데기가 검은 색이었던 랍스터는 익으면서 빨갛게 변한다. 색이 붉어지고 더듬이를 잡아 당겨서 쉽게 빠지면 다 익은 것. 너무 오래 익히면 살이 단단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백씨는 랍스터를 구워도 보고, 삶아도 봤지만 이렇게 찐 레서피가 맛이 가장 훌륭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완성된 랍스터가 식탁에 오르고 모두 식사를 시작했다.
백씨는 랍스터 외에 프렌치 브레드와 청포도만으로 간단하게 식탁을 차렸다.
메뉴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청포도를 내놓은 이유는 입맛을 정리하기 위한 것. 랍스터 먹는 중간중간 한두알씩 집어먹으면 입맛을 씻어 개운하게 해주므로 매번 랍스터의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단다.
시꺼먼 색 갑옷을 입고 손발이 묶인 채 반항하던 랍스터들이 불과 30분만에 빨간 색으로 새옷을 차려입은 듯 보기도 얌전하게 접시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자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였지만 한편 미안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더듬이와 작은 다리들을 대충 떼어내고 큼직한 다리부터 공략한다.
딱딱한 다리 껍질을 크래커(lobster cracker)로 몇군데 부숴뜨리고 손으로 껍질을 조심스레 잡아떼자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흰 살. 붉은 줄을 살짝 두른 통통한 가재 살이 통째로 기다리고 있다. 너무 크고 쫄깃쫄깃해서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어야될 정도.
흰 살 한 점을 녹인 버터에 찍어 입에 넣는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살아서 펄펄 뛰는 바다가재를 통째로 쪄냈으니 그 신선도와 황홀한 맛을 어찌 형용할 수 있으랴?
몇몇 사람들은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뜯는 일과 먹는 일, 그리고 감동하는 일에 열중하여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
사람들도 대개는 비슷하여 모두들 양손에 랍스터 국물을 온통 묻힌 채 서로 부숴주고 잘라주며 살을 발려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랍스터는 우아하게 먹기는 좀 힘든 메뉴. 발라내다가 국물이 튀거나 잔해물이 여기저기 떨어지기도 하고, 작은 다리들은 살이 얼마 없어 쪽쪽 빨아먹기도 해야하니 말이다. 또한 껍데기 쓰레기가 계속해서 쌓이므로 체면이 중요한 식사모임에서는 다른 메뉴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3파운드 짜리 랍스터 한마리를 다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당장 식구끼리 한번 해먹어보고, 다음번 손님 치를 때는 간단하고 훌륭한 랍스터로 특별 디너를 마련하리라. 손님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일어서는 것 같았다.
랍스터는 중국마켓에서 살아있는 것을 구입할 수 있다.
백운천씨가 가는 곳은 차이나타운의 피시 마켓 ‘Nam-Hoa Market’.
주소는 656 N. Broadway, LA, CA 90012, 전화번호는 (213)617-3400이다.
보통 한 사람당 2~3파운드 짜리를 사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가격은 현재 파운드당 9달러. 요즘이 랍스터가 실하고 쌀 때라고 한다.
랍스터는 축축한 천이나 젖은 미역 등으로 덮어서 아이스박스나 냉장고에 넣어두면 최소한 12시간은 살아있다. 랍스터는 절대로 민물에 넣거나 비닐 봉지 속에 넣어두면 안 된다.
<랍스터 먹는 방법>
1. 한 손으로 몸통을 잡고 커다란 앞다리 두 개를 잘라낸다. 2. 크래커를 사용해 다리 중간 부분을 부순 후 살을 꺼내 먹는다. 3. 꼬리를 잡고 등 부분으로 휘어 부러뜨린다. 4. 꼬리 끝의 날개와 같은 부분을 떼어낸다. 5. 한 손으로 꼬리의 껍질을 잡고 포크를 살 속에 깊이 꽂아 잡아당기면 꼬리 속의 살이 한 덩어리로 끌려나온다. 6. 등 껍질을 떼어낸다. 그 속에 초록빛을 띄고 있는 부분을 빵에 발라먹는 사람들도 있다. 7. 몸통을 세로로 잡고 반으로 쪼갠 후 그 사이사이에 있는 살을 파먹는다. 8. 작은 다리들 속에도 살이 있다.
<랍스터 크래커>
딱딱한 게나 랍스터 껍데기를 부술 때 필수적이다. 요리관련 스토어에서 살 수 있으며 ‘쉬 라 타블르’에서는 미끌거리지 않는 ‘자일리스 랍스터 크래커’(Zyliss Lobster Cracker)를 4개 세트를 21.95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글 ·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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