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한미 관계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 커뮤니티 자문위원회(APCAC)는 1일 오렌지카운티에서 한반도 사태에 관한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의원, 이채진 클레어몬트 대 교수, 존 던컨 UCLA 교수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북한 주민에게 진실 알려야
에드 로이스 / 연방하원의원<(공·가주)
한국 경제는 한국전후 지난 50년 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한국은 경제 강국일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들어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을 편다고 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일례로 금강산 관광을 보자. 한국인들로 하여금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일면 개방 조치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막을 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인과 대화를 나눈 북한인은 즉각 다른 곳으로 전출된다.
개선 공단 등 경제 개혁도 그렇다. 외국 자본을 끌어 들여 공장을 짓고 자본주의적 개혁을 하는 것 같지만 모양뿐이다. 투자가들이 주는 봉급은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부에 귀속된다. 노동자들은 북한 정부의 시녀일 뿐이다.
진정한 개혁과 개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이 고쳐져야 한다.
북한의 경제난과 함께 탈북자의 참상도 계속되고 있다. 만주 인근에는 30만에 가까운 탈북자들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이 기를 쓰고 북한을 탈출하는 것은 그 안에서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내 총생산의 35%를 김정일 일파가, 35%는 군이 차지한다. 절대 다수 국민은 나머지 30%를 가지고 나눠 먹어야 한다. 도저히 배를 채울 수 없는 양이다.
북한을 내부에서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3년 전 라디오를 듣고 탈출을 결심한 탈북자는 전체의 12%였다. 지금은 40%에 달한다. 내가 대북 자유 방송 시간을 하루 24시간으로 늘리고 라디오를 북한 주민에 보내는 법안을 상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는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이자 한미 동맹 50주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한미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미간의 보다 튼튼한 다리를 놓는 작업에 힘을 같이 하자.
4개의 시나리오
이채진 / 클레어먼트대 교수
한국은 전통적으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마다 깜짝 놀라는 나라’로 불려야 할 것 같다. 북한 핵을 비롯, 깜짝 놀랄 일들이 수시로 터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크게 4개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미국의 북한 억제 정책이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해상 봉쇄 등이 포함된다. 미국은 60년대 이미 쿠바에 대해 이 정책을 써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두 번째는 강압적 외교 정책이다. 국제적 공동 전선을 구축, 북한에 압력을 넣는 것이다. 90년대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 정책을 써 역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남아공은 국제 사회의 압력에 굴복 6개의 핵폭탄을 폐기 처분한 적이 있다. 물론 이에는 소련의 몰락 등 국제 정세가 바뀌었고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는 등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점도 관계가 있었다.
세 번째는 사전 공격이다. 1976년 이라크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핵발전소를 건설하자 이스라엘은 1981년 이를 폭격, 파괴해 버렸다.
물론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 이라크는 공격을 받고도 대응할 수단이 없었지만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또 북한은 중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다.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 서로 돕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이 북한 때문에 전쟁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네 번째는 불가침 조약과 상호 인정이다. 핵 동결뿐 아니라 핵 폐기를 조건으로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다.
나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매일 노동신문을 읽는 등 수 십 년 동안 북한을 연구해 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네 시나리오 중 하나가 앞으로 전개될 것으로 본다.
미국도 스스로 돌아봐야
존 던컨/UCLA 교수
나는 앞으로 한국 사태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 전망을 내놓을 자격은 없다. 단지 역사학도로서 현 상황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19세기말과 닮아 있다. 당시 중국은 종주국으로 조선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고 한반도는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과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의 각축장이었다.
조선이 서방국가 중 미국과 제일 먼저 수교한 것은 호시 탐탐 침략을 노리는 이들 나라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중반 유럽 열강이 중국을 자기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미국은 ‘오픈 도어’ 정책을 표방,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도 19세기 말이 되면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898년 스페인 전쟁을 계기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미 국무 장관 태프트와 일본 외무 장관 가쯔라가 밀약을 맺어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상대방의 기득권을 인정한 것도 그 때다.
나는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신보수주의자들과는 생각을 달리 한다.
나는 60년대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60년대말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이 일어났다. 그후에는 판문점에서 미군 도끼 살해사건이 이어졌고 미 북한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당국의 선전물은 미국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미국을 진정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북한에 아내의 친척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10년 전부터 이들과 연락이 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이들 편지는 물론 자체 검열이 돼 북한 당국에 대한 찬양이 제일먼저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게 됐다. 북한에 살고 있는 아내 가족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결혼하고 취직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 감정도 그렇다. 나이 든 세대들은 아직도 북한의 침략에서 자신을 구해준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들 중 반미 감정을 가진 자들이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이는 소수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 추모 촛불 시위 현장에 가 본 일이 있다. 그 행사에 참석한 사람 절대 다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미국의 고압적인 자세에 비판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제 한국민도 동등한 대접을 받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을 지원해왔다. 미국은 한국민을 반미주의자로 매도하기 전 미국이 과거 한국에 대해 한 일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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