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지난주에 이어 글 쓰기 싫어하는 3학년 준석이에게 글 쓰기를 가르친 성공담을 계속하려고 한다. 준석이가 우리 클리닉에 와서 글 쓰기를 배우는데 많은 희비극이 일어났었다.
그렇게 책읽기를 좋아하던 준석이가 책을 읽으라고 주면 “이것 읽고 독후감 써야 되요?”라고 묻는다.
“집에서 부모님은 독후감이라고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은 요약이라고 하는데, 결국 그것은 다 마찬가지 소리랍니다”라며 한숨을 짓는다.
나는 너무 우스워서,
“그럼 내가 선택해 주는 책이 아니고 네가 원하는 책을 그냥 읽으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그것도 안돼요.”
“왜?”
“사실은 제가 선택한 책은 요약할 것도 별로 없고, 독후감 쓸 것은 더구나 없고요!”
겨우 3학년밖에 안 된 준석이는 이미 흥미본위의 책과 명작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제일 먼저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한 후 다음과 같이 했다.
1. 준석이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읽고 난 뒤였다. 다음은 선생님과 준석이의 대화(이 대화는 옆에서 녹음이 되어져 있는 상태였다).
준석: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면 나는 좀 무서울 것 같아요.”
선생님: “네 말도 맞지만. 그것은 낮에는 잘 볼 수 있었다가 밤에 캄캄해져서 갑자기 만사가 잘 안보이니까 무섭지. 밤에 캄캄한 상태는 낮에 볼 수 있다는 기억이 머리에 있거든! 너, 태어나자마자 네가 아는 것이라고는 캄캄한 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우리 준석이는 무서움을 알까?”
준석: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처음부터 캄캄하다…. 한번도 생각을 못해봤는데요. 그러면, 정말 암흑(darkness)만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선생님도 모르시죠? 그리고 무슨 소리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것과 아주 조용하다 하고는 같은 것인가요?”
선생님: “글쎄다…. 나는 무슨 소리가 나도 이래서 나고, 왜 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무섭지 않은데…, 반면에 소리는 나는데 무슨 소리인지, 어디서 나는지를 모르면 무서워져! 더구나 밤에 그런 소리가 나면 말이다….”
준석:“그렇다면 헬렌 켈러는 무서움이라는 것을 조금도 모르고 살았다고 할 수 있나요?”
준석이는 책을 읽을 당시의 헬렌 켈러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으로 유명해졌으며, 그 분의 유명한 선생님이 누구였으며 등 단순한 사실(보통 주입식 교육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내용)에 대한 관심을 훨씬 넘어선 생각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네가 한 말의 정반대 말을 해 봐라.”
준석: (한참 생각 끝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세상…. 즉,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는 무서움도 없으면, 그것의 반대는 무엇이나 다 알고, 다 듣고, 다 보는 세상…. 즉, 그런 세상은 하나님이라고 하나요! 그분에게는 무서움도 없다는 말이에요?, 있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준석이가 영재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생각을 높이, 깊이 할 줄은 몰랐다.
‘선생님’이 책의 한 구절을 가리키며: “ㅡ산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더구나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더구나 신나는 일이다ㅡ이것이 헬렌 켈러가 한 말인데…, 너 이 글의 글귀의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준석이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좀 많이 생각해 봐야 하기에, 이것은 좀 생각했다가 써 올게요.”
“네. 써올게요. 그냥 생각만 하면 곧 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 지금까지 우리가 한 말들을 써놓았더라면 제가 생각할 때 더 도움이 됐을 텐데….”
선생님(조교)은 아무 말 안하고 녹음된 테입을 준석이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준석이와 선생님이 한 것은 초안을 잡은 것이었다. 준석이는 모르지만 서로 같이 준석이의 글의 초안을 잡았다. 읽기에서 나눠 읽기(shared rdg.)라는 말은 기억할 것이다. 아기들이 처음 발걸음을 뗄 때, 손을 잡아주듯 자신이 걷기는 걸어도 서로 나눠 걷는 것 같이 읽기도 어른과 서로 나눠 읽는 것을 의미한다.
쓰기에서의 나눠 쓰기란 쓰는 것 자체를 나눠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서로 같이 하는 것이다. 쓰기에서는 브레인 스톰(brain storm), 대화(dialogue)라고 하여 이때는 쓰기보다는 생각을 고무줄 잡아당기듯이 넓히기도 하고, 깊게도 해보는 것이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이것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할 수도 있다. 녹음 테입을 놓고 자기 스스로가 말로하며 또 자기 음성을 자기가 들으며, 생각하며, 또 자기 생각을 정리 정돈할 수가 있다. 이것을 아주 많이 해본 사람은 이런 과정을 테입을 통해 안 해도 자동적으로 머리로 하는데 그것이 테입으로 하든, 선생님과 함께 하든, 이런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준석이가 다음 날 선생님께(조교) 이런 말을 했다.
준석: “헬렌 켈러가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신나는 일이라고 했을 때는 그는 이미 장님, 귀머거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 “왜 그렇게 생각해?”
준석: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말은 ‘남’이라고 하는 것을 만져서만 알 수 있는데, 그 많은 사람을 다 만져 봤을 리 없고….”
선생님: “그러면 헬렌 켈러의 ‘남’은 무엇을 의미할까?”
준석: “우리는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가 없지요? 그래서 빛 없이 볼 수 있는 것은 없지요?”
선생님: “그럼 없지!”
준석: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신체의 내부는 빛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 볼 수 없지요. 그러나 XㅡRay가 들어가서 가슴, 심장, 내장…, 다 볼 수가 있지요. XㅡRay에 나타나는 것은 심장 자체는 아니죠? 그러나 XㅡRay로는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 다 볼 수가 있지요. 아마 헬렌 켈러는 XㅡRay 눈을 가지셨을 거예요.”
준석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클리닉에 어느 한 구석에 가서 열심히 무엇을 썼다. 제목은 “나의 눈과 헬렌 켈러의 눈, 나의 귀와 헬렌 켈러의 귀.” 20page나 되는 글을 그는 썼었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썼다고 해서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다음은 검토하기(conferencing)가 있다.
◆함께 검토하기(conferencing)
Donald Graves(1983), Lucy Clakins(1986), Nancie Atwell(1987) & Mary Heller(1990) 등은 모두 ‘다른 사람과 함께 검토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학생들이 보통 글을 쓸 때는 ‘누구에게 쓰는가’ ‘누가 읽을 것인가’ 등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학생의 글을 읽는 사람은 선생님들이다. 그러나 함께 검토하기를 통하여 학생들의 글을 읽는 사람이 반드시 선생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함께 검토하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격려와 칭찬을 통하여 쓰는 내용, 생각을 잘 정리했는지, 또 학생의 질문을 받고 또 어떤 면을 더 보충해야 하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 검토하기
선생님들은 학생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Nancie Atwell은 선생님이 직접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학생들이 쓴 내용에만 그 중점을 맞춰 문제점만 잡아주는 것에 함께 검토하기의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끼리 검토하기
가끔 학생들끼리 초안을 서로 읽어 주고 내용 정리가 잘 되는지 검토를 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초안들 듣는 학생의 질문 자체가 초안을 쓴 학생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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