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친구가 몹시 우울해한다기에 모여서 위로하기로 했다.
마침 또 다른 친구가 택스 리턴을 제법 두둑히 받았으니 쏘겠다고 해서 우리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위문공연을 갖게 되었다.
디프레스에 빠진 친구는 몇년전 남편이 목사가 되는 바람에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뒤늦게 사모가 된 친구다. 본인의 뜻은 아니었지만 워낙 성격이 좋고 사람들을 두루 잘 보살피며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기 때문에 사모노릇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느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나도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자기 비즈니스 하면서 남편 공부시키고, 목사 만들고, 교회 개척하고, 주위 친지들 돌보면서, 시댁도 챙기고, 한국서 유학온 친정 조카까지 데리고 살고 있으니 숨이 목에 찰 만도 하였다. 거기에 토요일이면 주일 점심식사 준비하느라 바쁘지, 일요일 교회 끝나면 허구헌날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밥해대는 일이 거의 매주말 발생하고 있으니 몹시 스트레스가 쌓인 모양이었다. 더구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가게에 나가 일해야 하는 직장인 아닌가.
나도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으며 살았고, 신문사에서 오만가지 사례들을 듣고 보았는지라 ‘한 상담’ 한다고 자부하면서 이것저것 조언을 늘어놓았지만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 이유는 ‘사모’라는 특수상황에서만 발생하는 스트레스였다. 그것도 한인교회의 사모라는 위치는 듣고 보니 참 보통 사람으로서는 알지 못할 애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참고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사모의 속마음과 입장을 한번 헤아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 친구의 ‘절규’ 일부분을 옮겨본다.
“나, 사모 안 하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사모 아닌 나만 챙겨도 되는 사람이고 싶어. 내가 돈벌어 우리 집만 책임져도 벅찬데 나는 교회 살림까지 해야해. 남들은 다 자기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사네 못사네 하는데, 나는 교인들 가정형편, 집안싸움까지 다 나서서 걱정해주고 기도해줘야 하는거야. 이런 일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야 되는거 아니니?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이 매번 어떻게 마음에서 우러나냐 말이야. 솔직히 안 우러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짓눌러서 짜야해. 근데 이게 하루, 이틀, 일년, 이년이냐구. 목사는 안식년이라도 있지, 사모는 국물도 없어. 너희들은 교회 가기 싫으면 안가지? 나도 솔직히 교회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 근데 사모가 안가면 어떻게 되겠어? 아마 난리 법석 뒤집어질걸. 평생 살면서 계속 이래야 될 것 아냐. 사모의 일이라는게 정말 좋은 일인건 알아. 또 누군가 해야되는 일인 줄도 알아. 그러나 그 일을 굳이 내가 하고 싶진 않아. 태생적으로 사모 자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더라. 그렇지만 나는 아닌가봐. 그리고 나같은 사모도 꽤 많을 걸.”
우리는 할 말을 잊고 조용히 먹기만 하면서 친구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모들의 고충이 어디 이것뿐이랴. 개중에는 너무 나대거나, 튀지 못해 안달인 사모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말못할 고생으로 가슴이 시커멓게 응어리진 사모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너무 세련되어도 안되고, 너무 촌스러워도 안되며, 너무 똑똑해도 이야깃거리, 너무 모자라도 흉볼거리, 말 한마디 실수해도 온 교인사이에 돌고 돌며,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참을 수 있으며, 마음이 바다같이 넓고, 신앙은 매일 금식기도 할 정도로 좋아야하고...
사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자. 목사처럼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신학교처럼 사모학교가 있어서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며, 교회 직분중에 사모라는 직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인 성도들은 사모를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여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고 무리한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 한가지만 기억하자. 사모는 단지 목사가 된 한 남자의 아내일 뿐이다. 목사인 남편과 그의 가정을 잘 챙기는 일 외에, 사모에게 다른 것을 당연히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생활 침해다. 나의 남편을 목사로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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