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C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간 혼수상태로 응급차에 실려 일주일간 병원 생활을 했으며 이제 겨우 회복 중이라 했다. 몇 달 전에도 그런 소식에 놀랐었는데 이제 몸 따로 마음 따로 의 어려운 시기에 이르렀음을 실감케 했다.
그리고 후배인 H가 우리를 초청했다며 모이는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집안이라 아이들 행사로 방문했던 일이 생각나서 물었다. 그 동안 못 보았고 그냥 식사나 함께 하자네요.”
정해진 일정을 각기 마친 일요일에 ‘윌셔’의 약속 장소에 모인 우리는 두 차로 나눠 타고 남쪽에 있는 H의 집으로 향했다. 붐비지 않는 후리웨이를 주행하는 차량들의 경쾌한 속도에 어울리게 차안의 화제도 가볍게 이어진다.
“우리 만남도 꽤 오래 됐지요?” 그리고 보니 이십년 가까이 크고 작은 행사나 개별적인 모임에 자주 어울려 온 사이다. 대학생으로 등단했던 H가 이제 세 아이의 바쁜 엄마로써 아줌마 대열에 진입하였고 그의 어머니뻘 되는 우리를 위해 경로잔치(?) 잔치를 준비하다니.... 순수함으로 다져온 오랜 시간들이 새삼 되살아났다. 시장기가 알맞은 오후에 그곳에 도착했는데 가까운 ‘로링힐’에 사는 J문인도 와 있었다. 잘 손질된 잔디 한가운데에 큰 식탁이 놓여 있고 그네와 시소 등의 놀이들이 알맞게 자리한 정원은 뽀얀 물안개가 감도는 바다와 하늘을 정면으로 펼치며 우리를 맞는다. “와 정말 좋구나” 세월의 흐름만큼 정직하게 자란 아이들을 반기며 시원한 바람 따라 기쁨을 나누었다.
신세대다운 재치로 정성스레 마련한 식사는 취향대로 채운 잔을 들어 건배하면서 느긋하게 그리움을 풀어 갔다. 치킨 샐러드와 상큼한 도미회, 잘 구워진 햄과 부드럽게 익힌 연어, 스페인식 바붸큐(소고기)에 토티야 와 살사, 꼬리까지 씹어 먹으라는 빛깔 좋은 새우튀김과 빠질 수 없는 신토불이의 김치와 밥까지 동서양의 푸짐한 홈메이드 요리를 천천히 포식했다. 또한 여러종류의 Nut을 깨 먹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클래식의 멋진 음률이 담소하며 즐기는 커피 향을 더욱 짙게 했다.
좀 늦게 합류한 멋쟁이 J작가는 자신이 노인 축에 들게 됨이 반갑지 않다 해서 모두를 웃겼고 집주인의 언니 자격으로 특별히 합석한 P작가는 그의 미모와 발랄함으로 기쁨조 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네 팀의 부부와 네 싱글의 적지 않은 선배들을 접대하는 내외는 밝은 동작과 재치 있는 유머로 우리를 편하게 했으며 손님 할아버지와 죽이 맞는 장난으로 깔깔거리는 어린것의 티 없는 웃음소리는 청자 빛 하늘로 메아리 되어 올라갔다.
따가운 햇빛으로 익은 몸을 식히려고 우리는 그 집 서재로 들어갔다. 그런데 무인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명단들을 클릭 하면서 대화방을 기웃거리는 재미로 컴퓨터 앞에 모여 있느라고 아쉽게도 낙조의 웅장한 광경을 놓치고 말았다. 개운한 조개 김치 국에 밥 말아서 저녁을 때우라는 권유에 따라 아직도 든든한 위장을 다독이며 식당으로 건너 가면서야 잔광을 떨구는 태양의 석별을 바라 본 것이다. 화사했던 ‘가든 파티’의 흥겨움이 조용한 일몰과 함께 여운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모두 아프시기도 했는데..... 이렇게 식사 한번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근래에 있었던 두 문인의 입원과 수술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작고하신 부모님 생각도 나서 자리를 마련했다는 그들 내외다운 효심이 고맙고 정겨웠다. “바쁜데 너무 수고했네.” 따뜻한 배려로 나눠준 봉지를 받아들고 밖에 나오니 어둔 하늘에 박힌 별들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어머, 오랜만에 별을 보네.” 뜻밖의 해후 같은 놀람에 잠시 호흡이 멎는다. 그리고 영롱한 별빛의 신선한 파문에 온몸으로 감격한다.
때때로 분별 없이 설치는 딱한 모양새를 보며 한심스럽기도 한데 이렇게 위로와 나눔이 더 많은 우리 주변이기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어지게 된다. 전조등으로 밝힌 ‘팔로스버디스’의 밤길은 규정된 간격의 질서를 지키며 나름의 행선을 재촉하는 자동차만 드믄 드믄 스쳐갔고 포근한 정서로 채웠던 우리의 시간은 열린 가슴 깊숙이 잦아들고 있었다. 선명한 자욱의 마침표를 남기면서.
이인숙
약 력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회원
▲미주 크리스찬 문인협회 회원
▲미주 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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