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 하기
우리 준석이는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며칠 전 그 반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 방문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을 도우러 갔지만 자연히 준석이에게 신경이 쓰여졌습니다. 제가 갔을 때에는 작문시간이었습니다. 몇 명은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하고, 또 한 그룹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각자가 쓴 작문에 대해 서로 토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서로가 쓴 작문을 교정을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배운 글 쓰기 시간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이해하고 나니까 보기 좋은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준석이는 종이에 파란 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문과 관련된 그 무엇을 하나보다 하고 그저 믿고 있었는데, 그저 1시간 동안 파란 칠만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혀서 준석이에게 너는 작문시간에 글은 안 쓰고 왜 색칠만 하고 앉아 있느냐니까, 자기가 그리는 그림(?)이 작문의 하나로 쓰이는 project의 일부라나요!
다음날 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생님 말씀에 준석이는 글 쓰기를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그룹에 넣어두면 토론은 안하고 다른 아이들과 말만하여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고, 교정하는 그룹은 끼어줄 수가 없고… 자기가 써놓은 글이 없으니 당연히 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할 수 없이 준석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지만 다른 학생들을 방해할 수 없으니, 책을 읽든지, 색칠을 하든지, 가끔은 종이 접기를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에 보통 선생님을 도울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있지 않는 다른 반 선생님을 돕게 되어 있는데 그 날만은 준석이의 글 쓰기 싫어하는 것을 부모님과 의논을 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반에 오게 했답니다. 어머님께 직접 보게 하고 싶었답니다. 선생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준석이에게 물으니 자기는 글 쓰기를 제일 싫어하고, 다른 것은 다해도 그것만은 안 한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하지요? - 3학년 준석 어머니 -
준석이 어머니와 선생님은 준석이의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만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준석이 말을 빌리자면 자기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 ‘글 쓰기’라는 것이다. 또 읽기는 대강 읽거나, 대충 지나갈 수 있는데, 쓰는 것은 베끼지 않는 이상 대충 넘어갈 수 없단다. 그 아이의 솔직함에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실 준석이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준석이는 많은 testing과 상담도 해 봤는데, 읽기 수준은 자기 학년에 수준의 1년8개월, 즉 거의 2년을 앞서가는 수재였다. 준석이의 ‘대강 읽는다’는 말은 3학년 수준에 너무 쉬우니까, 대강만 해도, 자기 말을 그대로 써본다면 ‘…슬쩍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쉬워서 잘 읽지 않고 지나가도 성적이 나온다는 말이다. 공부란 습관이어서 이렇게 대강의 짐작이 습관이 되면 큰일이다. 반대로 쓰기만은 이 대강이라는 것이 없다.
준석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은 “글을 써라! 글을 써라!” 강요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선생님과 교수들에게 크게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학생의 글이 자기 것이 아니고 남의 글을 베끼는 것이 된 일이다.
최근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이 베끼는 일이 더 심해졌다. 남의 것을 베낀다는 말은 사실 남의 생각(idea)을 주인의 허락 없이 가져온다는 말인데, 도둑질과 별 차이가 없다. 준석이부터 모든 학생들이 남의 것을 베낄 때 엄밀히 말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반드시 학생의 잘못이라고 만은 볼 수 없다.
“글을 써라! 글을 써라!”하는 강요를 받아도, 준석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쓰기 싫다고 떼를 쓰고, 솔직해서 색칠이라도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안 쓰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리포트 내기 전날 베껴서라도 내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분들이 글을 쓴다고 하면 우리가 학생 때 제일 많이 써본 것이 독후감이었다. 독후감 쓴 것을 내라고 하는 것은 작문의 결과만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작문의 결과가 있으려면 작문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이 쓰기의 단계를 가르치지 않고 무작정 쓰라고 하는 결론을 요구할 때, 학생들은 자연히 어떤 단계를 거쳐서 쓰는지를 모른다. 즉, 1층에서 10층을 한번에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이 단계를 자세히 알아보면:
1. 제 1단계-준비단계(지나간 칼럼들을 통해 이 단계에 대해 자세히 썼으니 참고 바람)
2. 제 2단계-쓰는 단계: 즉, 지금 준석이가 당면하고 있는 단계이다. 지금 준석이는, ①글은 잘 읽을 수 있는 단계이다. ②그림도 잘 그릴 수 있는 단계이다. 우선 준석이에게 글을 쓰라고 하지 말고 글 쓰기 전에 초안을 잡는 단계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 초안 잡기
누구든지 글을 쓸 때는 다 초안 잡기에서부터 시작한다.
a. 초등학교-이 나이에는 초안이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어떤 학생은 그림 그리기로부터 시작하여 도표 그리는 것까지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일단 써보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컴퓨터에 초안을 잡는 학생들도 많이 생겼다.
b. 중학교-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초안을 계속 잡아온 학생은 중학교쯤 되면, 초안을 잡는 것이 익숙해져서 가끔은 초안을 머리 속에서 잡는 학생들도 있다. 초안 잡기는 종이건 컴퓨터이건, 머리 속에서 하건 상관없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잘 잡은 초안이 나중에 잘 쓰여진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글 쓰기는 마치 대리석으로 조각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대리석이 아무리 좋아도 처음부터 예술품이나올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초안을 잡아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큰 대리석 앞에서 수백 시간도 넘게 혼자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주입식 교육으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늘 이 과정에 소홀했던 것 같다. 독서는 물론 쓰기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선생님들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이 꼭 한가지 있다. 그것은 초안의 목적은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을 일단 종이나 컴퓨터에 쓰고 그 내용에 초점을 맞춘 다음에 문장 구조, 문법, 철자법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초안을 잡을 때 꼭 가르쳐야 할 사항들
▲종이에 초안을 잡을 때는 앞면만 쓰게 할 것. 뒷장에는 나중에 연결된 사항을 더 넣을 수 있도록 한다. ▲앞면의 초안에도 줄을 하나씩 건너 쓰도록 해서 공간을 남긴다. ▲초안을 지울 일이 있으면 지우지 말고 줄을 긋게 한다. 나중에 지운 것을 다시 쓸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볼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것이다. ▲초안은 여러 개 잡을 수 있다. 각 초안마다 날짜와 페이지 수를 매겨 자기 스스로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지 보도록 한다. ▲초안은 어떤 notebook에 하게 하지말고 index card를 쓰게 한다. 이유는 초안에 연결된 다른 제목이 더 나열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index card는 도중삽입이 가능하다.
준석이가 현재 가장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보았다. 준석이는 무엇보다도 말을 잘 하였다. 이 말을 통하여 어떻게 초안을 잡는지는 지면상 다음주에 쓰겠다.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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