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지난 13일 연세대와 UCLA 공동 주최로 LA에서 열린 한인 정체성에 관한 세미나는 한국과 미국 주요 대학이 이 문제에 관해 마련한 첫 행사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행사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을 세 차례에 걸쳐 간추려 소개한다.
지난 100년 간 한국인을 포함한 700만 명이 넘는 동양인의 미국 진출과 급속한 부상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이들은 소위 “모범 소수 민족”이란 백인들의 칭찬을 들으며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매스 미디어들은 많은 동양인들이 백인들에 비해 수입의 불평등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전문인들도 나름대로 “유리 천장”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승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백인들의 이런 반응 뒤에는 소수 민족과 여성의 차별을 금지하고 그들의 고용을 긍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령과 복지 원호 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도사리고 있다. “동양계 미국인들은 자력으로 잘사는 데 왜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은 그렇게 못사는가”, “왜 너희들은 연방 정부의 복지 원호금이나 쳐다보며 사는가” 등등.
점점 세계화되고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그들은 이것이 갑자기 부상하는 동양인들 때문이라는 의구심과 질투심과 적개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에 주목해야 한다. 약소민족 집단 간의 반목과 경쟁은 서로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니 적극 피해야 할 일이다.
사실 여태까지 동양인들 특히 한인들은 목전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자기들이 일하고 사는 지역 공동체의 공동 복지는 외면하는 “얌체족”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아직까지 한국인들은 돈과 소비문화, 그리고 목전의 이익밖에 모르는 경제적인 동물들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이민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문제의 이면에는 문화의 충돌이나 오해가 개입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간 동안 축적된 민족적 습성도 문제가 된다. 한인은 대개가 개인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고 집단적으로 협력하여 미국의 정치와 사회 과정에 참여할 줄은 모르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서투른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이때까지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 동족끼리 더 치열하게 경쟁함으로써 남들로 하여금 어부지리를 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한인들이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 협조하여 능동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전통을 마련해야 한다. 한인들은 거칠게 돈만 벌고 소비문화에만 급급한 성향을 버리고 자신들이 살고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책임을 지는 사회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먼저 한국의 전통 속에서 무엇을 되찾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은 장시간 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형성되었던 배타적 성향과 자기보다 강대한 세력을 섬기는 사대 근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지난날 그들은 소중화로 자처하면서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고 유교를 중국보다 더 숭상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미주 한인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미국이 백인의 나라라는 판에 박힌 인식을 갖고 백인들이 흑인과 유색인종들에 대해 갖는 선입견과 편견을 본받아 마치 자신들도 백인인 양 착각하고 유색인종과 소수 민족들을 멸시하는 웃지 못할 희극을 벌이곤 한다. 이들은 속은 희면서 겉은 누런 ‘바나나 퍼스낼리티’를 갖고 자기네들도 백인들과 같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네들 눈앞의 금전적인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조세감면을 주장하고 소수 민족의 이해관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 공화당에 무턱대고 표를 주곤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미국의 꿈”을 추구할 수 있도록 다른 소수 민족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준 사람들이 바로 공민권 운동의 선두에서 싸워온 아프리칸 아메리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의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있는가. 표범이 자기의 반점들을 바꿀 수 있는가 (예레미아 13:23)”란 구절도 있다. 한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자각해야 한다.
정재식/보스턴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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