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때문에 또 난리다. 이번에도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 패턴도 똑같다. 대통령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파문이 인다. 슬쩍 말을 바꾼다. 잘 안 통한다. 허겁지겁 해명이 따른다.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넘어갔다. 사안이 끼리끼리의 국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리 간단치가 않을 것 같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상외교의 극히 민감한 부문을 건드려서다.
“대화 이외의(북핵해결) 방법은 거부한다는 시사를 했다.” 한일정상회담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반도의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고려하기로 합의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한·미, 미·일정상회담의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와 압력’이 필요하다고 합의했다.
노 대통령의 청와대 발언은 그런데 북핵문제와 관련해 대화 이외의 압력수단은 완전히 거부하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딴 소리를 하면서 미국과 일본 양국 정상과의 합의를 번복한 꼴이다.
노 대통령의 ‘대북 진심은 무엇인가’ ‘미국서는 이말 하고 일본서는 저말 하는가’- 파문이 확대되자 말을 바꾸었다. 대화를 강조하다 보니까 뭐 그렇게 됐다는 청와대의 해명이다.
큰 일이 있으면 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말 바꾸기가 뒤따르는가. 순진한 감상주의 탓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경험부족에서 오는 단순한 실수라는 지적이다. 과연 그럴까.
“정부의 파병결정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청와대가 지난 봄에 낸 성명이다. 명분은 없으나 국가의 실리를 위해 할 수 없이 한 선택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를 새삼 끄집어 낸 건 다른 게 아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노 대통령의 말 실수, 말 바꾸기는 그 ‘전략적 사고’라는 데 포인트를 맞출 때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전략적 사고에, 선택을 한다는 건 내심과는 다르게, 내면적 가치관과는 다르게 선택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입하면 노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결정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내심으로는 이라크전에 반대다. 그렇지만 북핵문제도 있고 하니 파병을 결정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의 파병반대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나의 고충을 알아 달라는 표시였다. 전략적 사고에 의한 결정이지 전쟁의 명분에는 반대라는 이야기였다.
전략적 선택을 한다는 건 또 이런 의미일 수도 있다. 현실적 이해를 바탕으로 제휴를 하지만 끈끈한 이념적 유대라든지, 가치의 공유는 없다는 말이다. 진정한 동맹관계에서는 그러므로 전략적 선택은 드문 경우에 이루어진다. 전략적 선택, 상황 논리로만 풀어 갈 때 실제 동맹관계는 유지가 어려워서다.
일관된 말 실수에는 또 다른 변수도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코드론이다. 본 마음은 -코드- 그 방향성이 왼쪽이다. 그런데 오른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핵 문제가 특히 그렇다.
여기서도 일종의 전략적 사고와 선택이 요구된다. 사고의 흐름은 그렇지만 좀처럼 본래의 방향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해서 다른 말이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마인드를 한 국내 논객은 ‘역(逆)의 멘탈리티’로 파악했다. 만사 반대 방향으로만 튄다는 것이다.
“북한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더 위험하다.” 노 대통령의 일본서의 발언이다. 한국민의 62%, 일본인 93%가 북한을 위험하게 본다는 일본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한 대답이라고 한다.
또 이런 발언도 했다. 한국이 우호관계를 돈독히 할 나라의 순서를 일본, 중국, 순서로 꼽으면서 맹방인 미국을 맨 뒤에 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 비로서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단순한 덕담일까. 청와대 해명대로 그럴 수도 있다. 일본에 갔으니 일본인의 구미에 맞는 말을 해야한다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의 멘탈리티의 역(逆)’을 표출 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본심의 표출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다.
미국을 축으로 한 북핵 폐기의 다국적 작전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됐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북한 선박과 항공기의 압수·수색 구상이 구체화됐다. 아니, 일본서는 이미 시작됐다. 대북 압박에 중국·러시아의 참여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이 와중에 노무현 정부만 혼자 딴 소리다. 그것도 일관성이 결여된 채…. 그래서 불신만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햇볕에만 집착한 ‘나홀로 코드’ 때문은 아닐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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