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제임스 박이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다. 요리를 좋아한다는 이 분은 ‘아버지 쿠킹 클래스’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요리에 관심 있는 아버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나누고 요리실습도 하면서 가족을 즐겁게 해주고 인생의 재미도 찾자는 모임이다.
“요새 좋은 아버지 되자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아버지의 요리야말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뭐 대단한거 하자는게 아녜요.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요리가 많이 있잖습니까? 평소 애들에게 뭘 좀 해주고 싶어도 마음만 있지 손이 잘 안 갔는데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라도 모티브를 가졌으면 합니다”
박씨는 요리 클래스를 생각만 해오다가 두어달 전부터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찾아 모으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4명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적어도 7~8명은 되어야 요리선생을 초빙해 강습도 듣고, 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찾기가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혹시 이 일에 관심있는 사람은 전화(310-989-5871) 하시기 바란다)
나는 이런 분들을 정말 존경한다. 가족 사랑이라고 여러말 할게 뭐 있는가. 음식이 곧 사랑이다. 남편들이여, 음식을 직접 만들어 한번 서브해보라. 매일 고마운 줄 모르고 먹었던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직접 만들어보길 바란다.
가장 쉬운 콩나물국부터 끓여보시라. 국물은 어떻게 내며, 파 마늘은 언제 넣고, 간을 무엇으로 맞추는지, 또 나물은 어떻게 데쳐서 무치는지, 오뎅은 어떻게 볶는지, 된장찌개는 무엇을 어떤 순서로 넣고 끓이는지... 맨날 차려주는 식탁에 앉아 먹지만 말고 더도 말고 한번만 만들어보시라. 아내의 노고에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굳이 한 사람의 예를 들어 무안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전형적인 한국 남자의 실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결혼하고 몇달 안 돼어 우리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날 남편이 자기가 저녁식사 준비를 할 것이니 퇴근하고 좀 천천히 들어오라고 하였다. 잔뜩 기대하며 늑장을 부리고 들어가보니 집안이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차우멘 한 접시를 한다고 벌여놓은 판은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했다. 부엌은 물론이고 주위의 모든 곳에 온갖 식품 재료와 그릇, 냄비, 후라이팬들이 다 나와 있었다. 냉장고 문은 아예 열려 있었고 수많은 양념통과 주방용기들이 제각기 자기 자리에서 이탈하여 갈 곳을 몰라하고 있었다. 차우멘의 맛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그것이 남편의 처음이자 마지막 요리였다. 그 이후에는 그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도 시키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도 인내심을 잃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독려하며 가르쳤어야 했다. 그런데 그만 나의 성질 탓에, 답답한 꼴은 보지 못하고, 내 식대로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그 잘난 성질 탓에 이후론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야근인지, 취재인지로 늦게 되었는데 남편은 자기가 라면을 끓여 먹을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밤늦게 돌아오니 출출하다고 뭘 좀 해달란다. 그럼 그렇지, 라면 하나로 찰 배가 아니지, 하면서 뚝딱뚝딱 거리는데 작은 소리로 묻는다. “왜 내가 끓인 라면은 그렇게 퉁퉁 불는거지?”
라면이 너무 불어서 도저히 먹지를 못하고 다 버렸다는 것이다.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물어보니 이 남자 라면을 처음 끓여보는 것이라, 물이 팔팔 끓을 때 면을 넣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찬물에 면과 수프를 다 함께 넣고 한참을 끓였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출장을 떠나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배를 잔뜩 냉장고에 사다 넣고 갔는데 돌아와보니 한 개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아니, 왜 안 먹었느냐고 물으니 남편은 유구무언, 아들이 볼멘 소리를 한다. “아빠가 깎을 줄 모른다고 안 줬어.”
내가 이렇듯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장한 아내요, 어머니다. 남편은 지금은 많이 나아져 라면은 끓인다. 급하면 밥도 할 줄 알고, 단 한 개지만 비장의 요리, 김치찌개도 생겼다. 좀더 척박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좀더 고급 요리도 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보인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아내가 며칠분 곰국을 잔뜩 끓이는 모습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아버지들은 제임스 박씨의 ‘아버지 쿠킹 클래스’를 찾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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