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사의 큰 조류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민주주의의 만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세기 초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 국한돼 있던 이 제도는 이제 전 세계에 퍼져 민주주의와는 지극히 거리가 먼 북한 같은 나라도 간판만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달고 있다.
다수결의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는 현대 정치의 신주단지로 확고히 자리잡았지만 다수결의 원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마틴 루터에서 갈릴레오를 거쳐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종교, 과학, 사회적 발전은 대부분의 경우 용기 있는 소수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
“옳을 때는 혼자라도 다수”라는 뉴잉글랜드 철학자 소로의 말이나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정치 제도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주의”라는 처칠의 주장은 모두 다수결의 병폐를 지적하고 있다. 가장 뛰어난 정치 문서의 하나로 손꼽히는 연방 헌법의 포인트는 철저한 민주주의의 실천이 아니라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 의견이 맞지 않는 대표적인 분야의 하나가 증권 시장이다. 하루 하루의 등락을 정확히 점치기는 불가능하지만 장기간 오르기 직전과 떨어지기 직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개미 군단의 퇴장과 등장이 그것이다. 살만한 사람이 모두 산 상태에서 주식은 오르지 않는다. 팔만한 사람이 다 판 상태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모든 사람이 주식이 오를 것으로 확신한 상태는 폭락 직전의 모습이다.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10,000, 나스닥이 5,000이 넘었던 2000년 3월이 바로 그랬다.
그 후 수년간 미 주가는 하락에 하락을 거듭, 작년에는 다우 7,200, 나스닥 1,100선까지 내려 갔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주가가 바닥을 쳤을 때는 “앞으로 주식을 사면 큰돈을 번다”는 소리는 찾아 볼 수 없었고 “더 떨어질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주 다우가 1년 만에 처음 9,000선을 회복하면서 “곧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이제야말로 주식을 살 때”라는 소리가 오래 간 만에 지상을 메우고 있다. 전설의 개미 군단도 다시 증시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사이더들은 무더기로 자사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두 부류 중 누가 더 주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지난 3개월 간의 주가 상승은 외형적인 화려함에도 불구,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가장 많이 오른 주식들이 실적은 별로 없이 약속만 요란한 생명 공학 주와 하이텍 관련 주라는 점이다. 2000년 3월의 재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투자가와 분석가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재는 낙관 지수는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높다. 자고로 투자가들의 희망이 하늘을 찌를 때 치고 장기적으로 주식이 오른 적은 없다. 오히려 착실히 주식이 오를 때는 “이것이 정말 호황 장세일까” 하는 회의론이 대세를 이룬다. 내릴 때는 정 반대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황소‘(bull market)는 ‘걱정의 벽’(wall of worry)을 타고 오르고 곰(bear market)은 ‘희망의 내리막길’(slope of hope)을 타고 내린다”고 말한다.
실물 경기를 보여주는 실업률과 공장 주문고 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에도 지금 투자가와 경기 분석가들은 연말 경기가 회복돼 좋은 시절이 돌아올 것이란 달콤한 희망에 젖어 있다. 이번에야말로 지난 수년간 날린 돈을 도로 찾는 것은 물론이고 단단히 한 몫 잡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과거에 돈을 잃었다고 앞으로 따게 해준다는 보장이 없는 것은 라스베가스나 월가나 마찬가지다. 시기적으로도 6월부터 10월은 연중 가장 주식이 오르지 않는 기간이다. 다우 9,000에 귀가 솔깃해지기보다는 각자 생업에 충실할 것을 권하고 싶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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