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한국에서는 결혼하기 전 신랑측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함으로 인하여 양가에 서로 큰 부담으로 여기고 있음을 자주 들으면서 지나치게 체면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풍습이 ‘함’에 대한 참 의미를 상실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함에 대한 별다른 상식이 없다. 내가 결혼할 때도 함의 형식을 대신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의도에서인지 남편이 혼자서 가방만 하나 들고 왔기 때문에 격식을 차려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함은 혼인 때 신랑측에서 채단과 혼서지를 넣어서 신부측에 보내는 나무궤짝을 말한다. 함은 나무궤짝에 불과한 물건일 뿐이지만 그 궤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따라서 신랑집 형편이 간접적으로 신부측에 알려질 수도 있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신부가 될 처녀에게 신랑의 부모들이 사랑과 정성을 담아서 보내는 선물이라면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을 굳혀보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큰 언니가 결혼을 했다. 우리 집에서는 대단한 경사였지만 어려서였는지 나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한가지 잊지 못할 일은 ‘함이 들어오던 날’이었다. 늦은 오후부터 형부의 친구들이 집에서 반 마일이나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거드름을 피우며 ‘함 사세요’를 외치며 도무지 집 가까이로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 었다.
그 당시에 대학을 다니던 오빠가 길 밖에 나가서 맞이하느라 애를 썼지만 집안으로 들여놓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날이 어두워 컴컴해져 가는 데도 함을 진 형부의 친구들은 형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들어올 생각조차 없이 때만 썼던 것 같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다섯 자녀를 강인한 의지력과 신앙의 지혜로 키우신 어머니는 그 행동을 도저히 용납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 이다.
“딸을 시집 보내지 않으면 그만이지, 사람을 이렇게 애태우는 것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시면서 굳은 얼굴로 대문을 잠그셨다. 한국의 풍습이 그런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형부와 친구들이 하얀 쑥돌로 올려진 층계 앞 대문 밖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극구 사죄를 한 후에야 겨우 집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 안방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큰언니는 예쁜 한복을 입고 당황하여 울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던 희미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들이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큰절을 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빌고 나서야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어 밤늦도록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떠날 때는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주는 어머니께 수도 없는 절을 하며 갔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그 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곤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와서 행해진 것이다.
오랜 기간 참한 처녀와 연애를 하던 둘째 아들이 형을 제치고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직은 어리고 공부도 마치지 못했는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이기도 했다. “일년 후 졸업할 때나 일년 전이나 무엇이 크게 다르겠느냐”는 아들에 말에 동의하고 결혼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결혼하는 한국 사람들의 예를 보면 많은 부모가 형편에 따라서 하겠지만 금전으로 대신하거나 자녀들이 돈을 버니까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이곳의 교육을 받고 자라서 가끔 이야기해 준 한국의 풍습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갖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왠지 내 마음에서 정성어린 사랑의 함을 보내야겠다는 우러나왔다.
사실 아이들에게 넉넉한 돈을 줄 형편도 되지 않지만 돈 몇푼으로 때우기에는 일생을 좌우하는 이 큰 일이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 때문에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함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안하고 힘은 들었지만 준비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어서 한결 결혼의 뜻을 음미할 수가 있었다. 준비를 하는 동안에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서 진정한 마음으로 삼면에 어린 천사가 꽃다발 항아리 옆을 나는 무늬가 박힌 아름다운 함을 준비하였다. 함을 보내기 전날 밤, 큰아들에게 보여 주면서 ‘네가 결혼할 때도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할 꺼야’하고 말해 주었다.
사돈댁에 이미 약속한 대로 함은 둘째 아들과 우리 부부가 가지고 갔다. 아들은 그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바쁘게 약속시간에 맞추려고 집을 떠난 ‘함이 들어가는 날’. 가는 길마다 계속 막히는 것이 아닌가?
큰언니의 기억이 내내 떠나지 않아서 남편과 함께 줄곧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5번 Fwy로 달리면 되는데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우리가 함을 싣고 달린다는 것을 이곳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이 알 리가 없는데 말이다. 길을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60번 Fwy로 바꿨탔다. 길이 훤하니 뚫려 있어서 ‘됐구나’ 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막혀 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함잽이 답지 않게 마음은 너무나 조급했다.
605번 South를 갈아탄 후 다시 막히는 상황에 맞닥뜨려 계속해서 아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핸드폰으로 알려 주었다.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그 날은 분명히 거드름을 피우며 들어갔던 옛적에 함잽이들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겨우 91번 Fwy를 들어서서야 남편은 스피드를 내어 달릴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나서 사돈댁에 도착하니 둘째 아들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사돈댁 부부와 며느리 될 아이가 인사하며 맞이하였다. 완전히 변형되어진 ‘함 들어가는 날’이 되었다.
미국에서 젊은 시절부터 생활을 해온 사돈댁 부부는 함이라 말은 들었어도 그 내용은 나보다도 더 모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함 나무상자를 열어 보며 서로의 함의 대한 지식을 나누면서 정말 정겨운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큰언니의 이야기를 뺄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아들밖에 없는 나에게 셋째 아이로 딸로 들어오는 아들의 애인은 정말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이다. 그는 나의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딸로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자식인 것이다. 열쇠로 함의 뚜껑을 열고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들을 펼쳐보면서 꾸밈없는 경이로운 태도로 “Thank You!”를 연발하면서 나를 꼭 끌어 안는다.
정성 들여 준비된 저녁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옛적부터 내려오는 말에 ‘멀어야 할 사돈’은 정말 가까이 사랑을 나누는 가족처럼 지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함께 둘러서 부르는 찬송으로 우리를 좋은 관계로 맺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함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가 만든 함은 나의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출렁대며 가득 채워져 있기에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딸의 부모님께 보내는 나의 글, ‘딸 맞을 준비’를 그 어머니께서 읽고 아이들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주면서 두 부부가 눈시울을 적신다. 이렇게 감격스럽고 즐거운 날이 함이 들어오는 날이라면 마냥 기다릴 수 있겠다면서 계속해서 놀라운 감정을 표현하는 그 아버지의 정겨운 태도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아들의 결혼을 위한 절차가운데 ‘함 들어가는 날’을 흔쾌히 치를 수 있었다. 늦은 밤, 짐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은 눈부신 대낮의 빛깔로 가득히 채워져 있었고, 올 때와는 달리 Fwy는 휑하게 뚫려져 있었다.
옥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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