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스님의 차
인류가 차를 발견하고 마시기 시작한 것은 2,00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사람과 몽고, 중앙아시아 민족은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차는 꼭 마실 만큼 차는 그들에게 필수품이 되어 있다. 차가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맛과 건강효과가 뛰어난 때문이겠지만 천천히 우려내서 따르고 마시는 절차가 상징하는 제의성 또한 한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그만큼 정신적인 안정감을 안겨 준다.
차는 엄밀히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을 일컬어야 하는데도 지금은 많은 대용음료까지도 차로 부르고 있다. ‘차 한잔 하자’면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고 생강이나 귤껍질, 모과로 만든 음료도 차라고 부른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雅言覺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물등을 달여 마시는 따위를 차라고 하나 이는 탕(湯)이라 해야 옳다”고 지적한바 있다.
어쨌든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차가 지닌 놀라운 약리작용들이 과학적으로 속속 입증돼면서 차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인타운에도 전통찻집이 생겨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흔히 차라고 할 때 우선 떠올리게 되는 것은 녹차와 홍차다. 한반도에서 재배되는 차나무중 85%가 흔히 ‘그린 티’로 불리는 일본의 야부기다종인데 이 차나무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엄청나 다른 차나무들을 밀어내고 자연스레 한국 차밭의 간판종으로 자리 잡았다.
신문이나 달력에 정원사가 가꾼 듯 질서정연하게 계단모양으로 언덕을 덮고 있는 진녹색의 차밭 사진이 많이 실리는데 야부기다종으로 보면 틀림없다.
일본산 야부기다종이 확산되면서 한국의 전통 자생차나무들의 입지는 자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인사들이 ‘한국전통자생차 보존회’를 만들어 전통차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출간된 ‘지허스님의 차’는 이런 전통차 알리기 노력이 맺은 결실의 하나이다.
지허스님은 전남 선암사주지로 50년이상 한국전통차를 기르고 보존하고 직접 덖어 온 한국차의 산 증인. 그가 들려 주는 한국 전통차 이야기는 차의 향기만큼이나 은은하고 전혀 물리지 않는다. 지허스님은 “일본 녹차를 감히 우리 차와 비교하지 말라”고 질타한다. 일본 녹차는 찻물 색이 녹색이고 풋내가 난다. 반면 우리 차는 다갈색에 구수한 향이 나는게 커다란 차이. 그런 녹차가 대표적인 한국차 행세를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는게 지허스님의 탄식이다.
지허스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차나무도 민족성을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전통 차나무는 몇가지 특성을 보이는데 그 하나는 다 자란 나무 키가 어른 허리만큼 밖에 안되지만 뿌리는 그보다 3배가 깊을 정도로 당차다는 점이다. 또 자생 차밭은 대개 자갈밭이나 바위 많은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으며 벌레, 잡초가 함께 어울려 자라는 ‘삶의 공동체’이다. 우리네 민족이 살아온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다.
지허스님이 차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밭에서 수확한 찻잎은 수분을 증발시키고 차의 주성분을 함축시키기 위해 무려 여덟 번에서 열두번까지 반복되는 ‘덖기 과정’과 최후의 ‘볶기 과정’을 거쳐 차로 탄생된다. 경륜뿐 아니라 정성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지허스님은 “좋은 기술을 지닌 사람이 좋은 차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좋은 차를 만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허례에 가까운 일본식 다도와 달리 한국 전통차의 다도는 자유롭고 격식에 매이지 않는다. “한국 전통차의 다도에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누워서 마시지만 않으면 된다”는 지허스님의 이야기는 ‘다도’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부담감을 날려 보낸다.
한국차의 우수성을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차들과의 비교가 따르게 되고 차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을수 있는 안내서로도 유용하다. 글과 함께 실린 전통차 관련 사진들도 아름답다. 책갈피에서 향긋한 차 내음이 솔솔 배어나와 코끝을 맴도는듯 하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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