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도매업체‘한미’ 유통과정 살펴보면
우리가 먹는 한국산 식품은 어떻게 유통될까.
이민 가정의 식탁은 수입식품이 많기 마련이다. 이국 땅에서 한식을 먹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 컬렉션이 화려한 대신 한국 식품은 선택폭도 좁다. 외국산 수입 규제가 까다로운데다 로컬 도매업체들이 ‘팔릴’ 것들만 들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인 우리는 수입식품에 대한 구매기준이 깐깐하고, 늘 긴장한다. 유통기한에 민감할 뿐 아니라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면 좋으면서도 불안하다. 오래 묵은 것은 아닌가, 한국서 안 팔려서 처분용으로 온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LA에 수입업체들이 난립하고는 있으나 아직 건전한 유통보다는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신경 쓰인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버논시에 있는 종합식품도매업체 ‘한미’를 방문, 생산에서 소비까지 공정과정과 LA식품 업계의 특징,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선제조건 등을 취재해봤다.
◇수천 가지 식품 다루는 백화점
‘한미식품’(법인장 김희곤)은 해태와 함께 로컬 한인식품도매업계의 2강 구도를 이루는 대형 업체다. 최근 도매로 눈을 돌린 CJ가 가세하면 3강 체제로 가리라는 전망이다. 한국의 ‘삼진글로벌넷’이 모기업이며 미주 전역의 한인 및 중국, 일본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연 매출액이 8,000여만 달러에 달한다.
버논시에 있는 한미의 웨어하우스 규모는 4만 스퀘어피트. 한국,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롱비치항으로 들어온 식품들이 이 웨어하우스를 들러 미 전역의 마켓으로 배달된다. 취급품목은 종류별 크기별 다 포함해 2,000여가지로, 고기와 날생선, 야채 빼고 전부 다라고 보면 된다. 한미쌀 등 ‘왕’(Wang)이라고 쓴 붉은 색 로고가 있는 제품들이다.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로컬 생산도 한다. 수입규제가 심한 만두 등 고기함유식품들이 주종이다.
◇한국산 식품 유통과 품질문제
한국의 부산항 등에서 뜬 컨테이너가 LA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1일. 세관 통과해 컨테이너 째 창고로 왔다가 마켓에서 팔리는 데는 또 다시 1∼2주가 소요된다. 요즘은 테러 이후 세관 검사가 까다로워져 통관과정이 더 길다. 컨테이너가 꽉 묶였던 지난 서부항만 파업 때는 항구에서 신선도를 까먹는데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한인 소비자들 사이에 김 등 일부 식품이 묵은 것 같다는 지적이 많다. 한미에 따르면 수입통관을 거치는 특성상 한국 내수용보다 신선도가 떨어질 수는 있으나, 검열시간이나 보관방법 등 변수가 많다. 김을 눕히지 않고 세워 진열하면 기름이 아래로 고여 묵어 보인다는 것이다. 제조일자가 찍혀있지 않거나 내수용이 걸리지 않고 통과되는 건 일종의 운이다. 그러므로 마켓에 나온 즉시, 제조일자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구매방법이다.
요즘 중국산이 판을 친다. 실제로 한국산 중 중국산이 80%이라고 한다. 제조업체는 한국산이나 재료는 중국산이다. 고춧가루의 경우 중국을 넘어 몽골산까지 올라간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산이라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과정이 문제다. 코카콜라나 폴로 셔츠가 이름만 미국산인 것과 마찬가지다. 품질기준(quality standard)을 적용하는 브랜드는 공정과정이 엄격해 믿을 수 있다. 회사 선택이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정당한 가격이 품질 보증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한 가격문제는 답이 하나다. 정당한 가격은 그만큼 품질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LA 한인식품업계는 품질보다 가격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도매업체들이 전문성 없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물건을 취급하면서 가격 치기로 기형적인 경쟁을 양산한다. 한국은 최고급 시장이 따로 있고 고객 세분화가 가능하나, LA는 저가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가격에 편향돼 고급화는 모험이라고 한다.
JFC, 니시모토 등 수십 년 된 대형업체들이 70%를 점유하는 일본시장에 비해 한인시장은 군소 업체들이 난립한다. 미국 그로서리 업계는 ‘유니파이드 웨스턴 그로서리’(Unified Western Grocery)라고 하는 중간도매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으나 한인시장에선 전무하다.
이런 과도기를 넘어서려면 아직 10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한국의 매뉴팩처러들과 LA 도매업체, 마켓들의 유통관계도 재정비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건 소비자들의 의식구조다. 한미 관계자들은 “값이 싸면 그만한 고통이 따른다는 걸 소비자들이 알았으면 한다”며 “이민 연륜은 쌓였는데, 먹거리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초창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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