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와인과 관련된 직업도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 ‘카르트 뒤 뱅’(Carte du Vin)의 제프 스미스가 바로 그 중 한 사람인데,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와인 셀러에 저장되어 있는 와인병들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내가 만약 와인이 가득 찬 와인 셀러를 갖고 있다면 새로운 와인이 생길 때마다 위치를 정해서 잘 넣어두고 그걸 컴퓨터나 장부에 기록하면서 큰 기쁨을 느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수천병에 달하는 와인을 소장한 수집가라면 뭐가 어디에 있고, 어떤 걸 언제 마셔야 하는지 일일이 다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와인을 많이 소장한 사람이라면 매우 넉넉한 사람일테니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정리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와인을 정리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와인 레이블에 적혀있는 많은 정보들 중 어떤 것이 중요한 정보인가를 알아야 하고, 와인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서 어떤 와인을 어디에 위치하도록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제프 스미스는 고객의 와인을 품종과 지역에 따라 정리해주고, 그걸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처럼 책으로 만들어주고,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저장하여 주는 것뿐만 아니라, 소장한 와인들이 여러 전문가들과 전문지로부터 받은 점수, 와인을 마셔야 할 시기, 와인의 현재 가치 등을 기록해 준다.
뿐만 아니라 고객이 얼마나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는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목록을 책으로 만들거나, CD로 만드는 것 외에,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사람만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개인 휴대폰이나 휴대용 전자수첩(palm organizer)을 이용하여 언제나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고객이 원하는 와인을 대신 구매해 주기도 하고, 어떤 와인을 살 것인가에 대한 조언도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하나이다. 와인을 좋아하고, 정리 정돈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정말 꿈만 같은 직업이다.
제프 스미스가 이러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와인을 좋아하는 아버지 밑에서 와인을 많이 접하면서 살아왔다는 점과, 많은 주변 친지들이 적게는 수백병에서 많게는 수천병까지의 와인 수집가라는 점, 마케팅을 전공하고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마케팅을 맡아서 일을 해온 경력과,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점, 어려서부터 정리정돈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는 점 등 모든 부분이 들어맞아서 생긴 결과이다.
제프 스미스의 아버지는 전 캐피톨 레코즈(Capitol Records) 최고 경영자 조 스미스로 그가 경영자로 있을 때 캐피톨 레코즈가 그레잇풀 데드,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테일러, 프랭크 자파, 앨리스 쿠퍼, 밴 모리슨, 랜디 뉴먼 등 기라성같은 가수들의 첫 음반 계약을 체결한 경력이 있는 유명인이다. 조 스미스는 와인 애호가로도 유명한데, 현재 그의 와인 셀러에는 약 7,500병의 와인이 저장되어 있다.
전해지는 일화에 의하면 그가 그룹 이글스와 계약을 체결할 때 1962년 샤토 라피트를 맛보게 했는데, 그 후 이글스는 계약서에 자신들이 컨서트를 한 번 할 때마다 프로모터가 1962년 샤토 라피트를 자신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고 한다.
아버지 조 스미스가 5년전 새로 지은 베벌리힐스의 저택으로 이사하면서 아들에게 와인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 것이 카르트 뒤 뱅의 탄생 계기가 되었다. 그가 수천병에 달하는 와인을 하나씩 장부에 기입하고 새로 위치를 정해서 정돈한 후, 곧이어 그의 매형이 2,000병에 달하는 와인 셀러를 정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또 다른 친척이 자신의 와인 셀러 정돈을 제프에게 맡기게 되면서 카르트 뒤 뱅이 탄생한 것이다.
그 전에는 어디에 어떤 와인이 있는지도 모르고, 마셔야 할 시기가 지나서 와인을 버려야했던 조 스미스는, 이제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할 때면 아들이 만들어준 와인 리스트를 손님들에게 돌리면서, 어떤 와인을 마시고 싶은가를 자랑스럽게 묻는다. 저녁 초대를 받은 손님 중 몇 명이 제프 스미스에게 자신의 와인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물론이다.
카르트 뒤 뱅은 경쟁업체가 별로 없다. 와인 스토어들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의 와인 셀러 정리하는 일을 꺼리고, 제프 스미스만큼 와인과 컴퓨터, 인맥 등 다방면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 정돈이 취미여서 어렸을 때부터 야구선수 카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던 제프는, 고객의 와인 셀러에 처음 들어갈 때 마치 고고학자가 고대 유물로 가득 찬 새로운 동굴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설레인다고 한다.
현재 43세의 제프 스미스는 할리웃 힐스에 거주하며 약 200병의 와인을 소장하고 있다. 그가 즐겨 모으는 와인은 소테른으로, 1967년산 샤토 디켕의 소테른도 그 중 포함되어 있다.
카르트 뒤 뱅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병당 2달러에서 3달러의 가격을 제공하고 있다. 전화번호는 323-876-3853, 웹사이트 주소는 www.carteduvin. com 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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