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의욕으로 가득찬 집 지어요”
자녀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 번듯한 직업인으로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소망이라 어려서부터 공부, 공부만 강조하다보니 나이 먹어 제 집 지니고 살면서 전구 하나 갈아 끼우지 못하고 못 하나 제 손으로 박지 못하는 애어른이 되거나,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참 중요한 고교시절에 세월만 낭비하는 아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실용 교육의 필요성에 의거, 미국에는 중고교 교과과정에 자동차 수리, 목공등 직업(vocational) 교육 클래스들이 과거부터 존재해 왔지만 1970년대 이후 교육 예산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삭감되어왔고, 특히 교육기준 및 학력고사 성적, 대학 입학 준비에 비중이 더해진 최근 10여년간, 첨단 기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21세기에는 부적절한 과목으로 여겨져 컴퓨터에 밀리거나 빈번히 퇴출되어 작년에 600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목공을 배우는 학생은 140개교에서 1만3000명에 불과했다. 반면 남가주의 이 불경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축업계는 심각한 인력난에 봉착하게 됐다. 계속 증가하는 신개발 지역의 많은 건축물 신축, 기존 건물의 개축, 재단장 등 일거리는 지천으로 늘고 있으나 도제나 대학, 지역 직업훈련프로그램 졸업생을 통틀어 봐도 앞으로 10년쯤 후에 은퇴하거나 업계를 떠날 숙련공들의 자리를 채우기에 크게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오자 고등학교에 손을 뻗치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즉각 건축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학력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부족한 건축업계 인력양성하면서 학생은 실용교육
2년전 애나하임의 카텔라 고등학교에 설립된 ‘건축업계기술아카데미(Building Industry Technology Academy)’는 1200여명의 제너럴 컨트랙터들이 가입해있는 건축업계협회(BIA) 오렌지카운티 지부와 노스 오렌지카운티 ROP, 애나하임 통합교육구가 합작해 일구고 있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다. 고교 4년간 정규 교과 과정과 함께 건축 기술을 가르치는 이 아카데미는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수학, 과학, 영어, 역사등 핵심 과목들도 실제 적용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되며 BIA는 커리큘럼에 대한 자문은 물론, 관계 전문가를 강사도 파견하고 필요한 자재는 물론 견학, 인턴십 등을 제공하고 있다.
정규 과목및 제도 담당 교사들과 팀을 이뤄 이 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주임 교사 존 퍼켓(37)은 제너럴 컨트랙터 출신. 컨트랙터로 일할 때 자신도 휘하에 부릴 일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는 그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며 청소년 교육에 자질이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게 되면서 보수는 훨씬 적지만 건축업계 인력 양성으로 커뮤니티에 봉사하기로 마음먹고 교직을 수락했다.
매일 6시간동안 카텔라 고교 학생을 가르치고, 주 2회는 저녁 5시~9시, 토요일 오전에 성인 및 타 고교 ROP 학생을 지도하면서 새로 생겨 전례가 없는 이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한편 기존 업계 인력을 상대로 쓰여진 교과서를 건축의 기역자도 모르는 고교생용으로 새로 풀어 쓰느라 주 75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 3~4년 걸려 커리큘럼과 교과서가 완성되면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 제공할 예정으로 현재 많은 교육구들이이 아카데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여학생 12명을 포함하여 초급반에 85명, 중급반에 95명이 재학중인 이 아카데미 학생들은 일일 수업시간 6시간중 1~2시간을 실습에 할애하는데 첫해동안은 목공 기초로 계량 및 측정, 기계 및 부품의 이름 및 사용법등을 익히고 그 기술을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디자인해 만든다.
다음 해는 전기, 연관, 설계, 조경, 가구 등등 건축과 관계된 26개 분야에 대해 탐구한다. 3년째에는 제도를 배우며 블루프린트를 그리는 한편, 제도반에서 그려준 블루프린트를 해독하여 건물을 짓는다. 4학년을 마칠 때쯤이면 상하수도와 전기, 난방과 냉방, 주방이 제 기능을 하는 진짜 집 한 채를 디자인해서 실제로 지을 수 있게 훈련시킨다.
그렇게 실습을 하면서 아이들은 도대체 쓸데도 없는데 골치 아프게 배워야 한다고 불평하던 기하, 삼각함수는 물론, 역사, 영어 과목의 용도를 당장 깨닫게 된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지역 학생 건축 경연대회에 출전해 대학 팀도 물리치고 1등을 차지한 이 학교팀의 팀장이었던 12학년생 비에네이 몬테하노(18)는 재작년에 수학에 낙제를 해 서머스쿨에 보충했지만 남동생의 권고로 이 아카데미에 등록한 이후 수학은 물론 다른 과목도 모두 열심히 하게 됐고 과거에 무서워하던 지붕에 올라가기나 여러 가지 전기 공구 다루기 쯤은 척척하게 됐다.
장차 빌딩 인스펙션과 건축 매지니먼트를 하고 싶다는 이 아가씨는 다음 학기에 대학에 다니면서도 ROP 저녁 클래스에서 더 배울 생각이다. 도무지 학과 과목에 취미가 없어 열등아 취급을 받거나, 학교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다가 이 아카데미에 와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찾고, 장래 진로 및 목표를 찾게 된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이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졸업후 당장 취직을 하면 시간당 10달러 정도의 초임을 받으며 현장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숙련시킬 수 있으니 아무 기술도 없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허드렛일을 하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취업해서 일하면서 회사에서 권장하며 제공하는 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을 다녀 학위를 취득하고 간부가 되면 6자리수 연봉은 거뜬히 받고, 독립해서 자기 회사를 차리면 무제한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20대 중반에 대여섯명 거느리고 일하며 100만달러를 버는 청년, 직원 2명을 두고 지붕 프레임만 짜며 연간 20만달러를 집에 가져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자신도 고등학교때 기하를 그렇게 싫어하다 목수로 일하며 기하 지식 가지고 살게 됐으며, 목수로 일하면서 9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퍼켓이 원하는 것은 이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대학에 안가고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기술에 학위를 더하면 더 나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을 알기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직업교육의 목표가 대학진학을 막는 것이 아니라는 퍼켓은 이미 오렌지 코스트 칼리지, 롱비치 시티 칼리지, 풀러튼 칼리지들과 접촉해 고급 과정 신설을 약속 받아, 이 학교 졸업생들이 진학할 경우 고등학교에서 받은 학점을 인정받고 다음 과정을 공부하도록 길을 닦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이 목재로 틀만 짜놓은 집이 서너채, 현재 만들고 있는 것이 두채인 이 아카데미 실습장에서 지난 28일 오전 중급반 학생들은 요즘 남가주 건축업계에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한 철제 골조에 지붕 올리기를 하고 있었다. 퍼시픽 코스트 트러스사가 파견한 강사 펠리페 페냐 주니어(21)가 학생들에게 도면대로 철제빔을 연결시키기를 가르칠 겸 만들어 놓은 지붕 프레임을 올려 고정시키고 있었다. 목조 프레임이 대부분인 남가주에서 불에 타지 않고 목재에 비해 가격이 안정되어 있다는 장점 때문에 목재보다 자재 및 인건비가 비싸고 방열이 안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더하고 있어 기존의 목수들도 앞다퉈 배우려는 신기술이다. 취업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새로운 기술과 확실한 장래 목표와 희망을 안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그 날의 하늘만큼 푸르러 보였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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