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인디애나의 한 주부가 ‘주부 파업’을 선언해 유명인사가 됐었다. 캐시라는 45세의 이 여성은 “직장일, 집안일 병행하느라 지쳤다. 남편은 낚시로 신선 놀음하는 데 나는 일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며 가사노동에 대해 남편이 새로운 인식을 가질 때까지 ‘파업이다’고 선언 했다.
이런 사사로운 가정사를 언론이 어떤 경로로 알게됐는지는 모르지만 지방 언론에 한번 보도가 되자 이 소식은 전국, 전 세계 미디어로 날개 달린 듯 퍼져 나갔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자기 남편에게 하는 개인적 ‘시위’가 왜 이렇게 뉴스가 되는 걸까. 그 한 주부의 심정이 세상의 모든 주부들의 가슴에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 일,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마감해온 날들이 어느새 새해 들어 5개월이 되었다. 새해를 맞는다는 기대로 들떴던 몸과 마음도 지금쯤은 축 쳐져서 활력소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남성들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탈출 충동이 없지 않겠지만 여성들은 특히 심하다. 여성은 대개 남성에 비해 스트레스 해소의 기회가 적은 데다 가사노동이 사람을 유난히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 아무리 해도 눈에 띄지 않는 것,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 가사노동의 특징이다. 직장일로 지쳐서 돌아온 저녁, 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감, 마구 어질러진 거실, 그 옆에서 태평스럽게 TV만 보는 남편, 배고프다고 저녁 재촉하는 아이들… ‘주부 파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부 휴가’라도 요구하고 싶은 마음을 여성들은 꾹꾹 누르며 산다.
얼마전 주부들 몇명이 모인 자리에서 “여자들끼리 여행 한번 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래요, 정말 재미있겠어요” “집안일 다 잊고 하루라도 지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없어봐야 남편도, 아이들도 우리가 귀한 줄을 알지요”… 여성들은 모두가 대 찬성을 하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날의 ‘여행’은 논의로 끝났다. 여행 장소, 일정, 기간을 두서없이 이야기 하다가 결국은 ‘언젠가 나중에’로 미루어 졌다. “우리 아이들 밥을 누가 챙기나” “우리 남편은 와이셔츠, 넥타이도 혼자 못 고르는데”… 이유는 많았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이야기 만으로도 주부들은 해방감을 누린 듯 했다.
휴가의 건강 증진효과는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휴가가 단순히 정신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조사 결과들이다.
예를 들어 뉴욕 주립대학 심리학과 연구진이 심장병 발병 위험이 높은 남성들 1만2,000명을 대상으로 9년간 연구한 바에 의하면 매년 규칙적으로 휴가를 간 사람들은 휴가를 챙기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사망위험이 낮았다.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내버리는 경험이 건강으로 직결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여성들은 일년에 한번쯤 주부라는 직무에서 휴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챙기고 돌봐야할 가족들 없이 여자들끼리 떠나는 여행이다. 삼남매 다 키우고 나서 여자들끼리의 여행을 즐긴다는 60대 초반 주부 의 말.
“가족 여행은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이지요. 가족들끼리 똘똘 뭉쳐 여행하다 보면 결속감도 강해지고 좋은 추억도 생겨요. 하지만 주부 입장에서는 온전한 휴가라고 할수 없어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거든요”
반면 여자친구들끼리의 여행은 ‘완전한 해방감’의 기회라고 그 주부는 말한다. 여행사의 관광단을 따라 친구들과 여행을 한다는 50대의 주부는 ‘가슴속의 응어리를 털어내는 기회’로 여자들끼리의 여행의 좋은 점을 꼽는다.
“낮에는 관광하고 밤이면 호텔 방에서 밤새 이야기꽃이 피지요. 주로 남편, 자식들 때문에 속상한 일, 속으로 꾹꾹 누르며 혼자 참아온 이야기들인데 들어보면 대개 비슷해요. 한바탕 털어놓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지요”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는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고 ‘섬’에서 썼다.
올 여름에는 가족 여행과 아울러 여성들이 ‘주부 휴가’도 시도해보았으면 한다.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가족과 삶을 되찾기 위해서. 물론 남편들의 협조가 전제조건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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