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는 근본에 있어 경제에 대한 국민투표다. 대선 시즌이면 늘 들먹여지는 말이다. 제 아무리 치적을 자랑해도 경제가 나빠지면 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게 지난 92년의 대선 구호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민주당이 내건 이 구호에 조지 부시(아버지)는 녹아웃이 됐다.
그리고 나서 11년. 아들 조지 부시가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 이라크전에서 승리했다.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그런데 경제가 문제다. 그렇다고 설마 재선가도에 브레이크가 걸릴까…
아버지 부시의 경우는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한 때 91%에 이르던 지지율도 허사가 된 것. 문제는 경제인데, 그 포인트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그러면 이번 대선의 구호도 결국 11년 전의 되풀이가 될 것인가.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 41대 대통령 부시와 43대 대통령 부시가 맞은 상황은 흡사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러므로 2004년의 대선이 92년판이 된다는 건 오산이다.
공화당 보수파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민주당 사람들의 판단도 비슷하다. 그러므로 민주당 입장에서 2004년의 진정한 승자는 힐러리 클린턴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았으니까.
아버지 부시는 당시 민주당 후보는 물론이고 사실상의 또 다른 공화당 후보하고도 싸워야 했다. 로스 페로다. 페로 지지표가 이탈함으로써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아들 부시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다. 보다 선명한 반전주의 좌파 인물이 제 3당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 경우는 민주당의 표가 갈린다. 공화당 내 우파는 반면 부시를 굳건히 지지해 ‘페로 현상’ 같은 복병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92년과 다른 상황은 이것 말고 또 있다. 해외정책이 선거의 주 아젠다가 된다는 점이다.
동서냉전은 끝났다. 걸프전쟁은 먼 곳에서의 전쟁이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있을 것 같지 않다. ‘냉전의 전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92년 대선 분위기다.
테러전쟁은 먼 곳에서의 전쟁이 아니다. 이 땅, 미국 땅에서 수천명이 테러로 숨졌다. 외부로부터 위협은 상존한다. 9.11사태가 모든 것을 바뀌게 한 것이다. 2003년 5월 현재의 분위기다.
그러므로 해외정책이 주 아젠다로 떠오른다는 전망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까지는 18개월이 남아 있다. 그 때까지 이 분위기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렇게 만들지도 모른다. 부시의 재선을 위해서는.” 2004년 대선 정국과 관련해 진보세력이 부시 진영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다. 칼 로브의 부상과 함께 그리고 그 의심은 더 굳어지는 느낌이다.
“미국을 이라크 전쟁으로 이끈 장본인은 칼 로브다. 그 목적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오로지 조지 부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일부 진보세력의 분석이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는 그러나 오리무중이다. 경제는 나빠진다. 불만이 고조된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을 연계시킨다.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한다. 신보수주의파 해외 정책팀도 이 점에는 대찬성이다.
부시 재선만 오로지 염두에 둔 로브의 정치적 복안에 따라 이라크 전쟁이 치러졌다는 주장이다. 이런 로브인 만큼 부시 재선에 유리한 대선 정국 조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단초를 이들은 지난 1일 부시가 항공모함 링컨호 선상에서 한 연설에서 찾는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이라크 전투’라고 말함으로써 더 큰 전쟁을 앞둔 서전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시사를 던졌다는 것이다.
물론 진보파의 과민 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만 볼 수는 없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분위기가 점차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하는 말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두 나라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미국의 강경 입장에 한국이 밀린 결과다. 일본도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공언하고 나섰다. 그리고 마약을, 달러화 위폐를, 미사일을 밀매하고 있는 ‘악의 축’ 북한의 속성을 온 세상에 공개하는 청문회가 잇달고 있다. 무엇을 위한 명분축적일까.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리자.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2004년에도 통하는 구호일까. 그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경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보다는 이렇게 된다는 게 보수파의 주장이다. “아니야, 테러전쟁이야, 천치야!”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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