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다가 1년 전 은퇴한 홍상설 목사(72)는 은퇴 후가 더 바빠졌다. 그가 교회와 함께 개설, 원장을 맡아 운영해 오던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활성화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한달에 한번씩 청암논단을 개최하고 있는데 주제는 성경 연구에서부터 교회운영 문제, 남북통일문제, 테러와의 전쟁 등 목회자와 신앙인들
이 알아야 할 다양한 내용들이다. 그의 요즘 생활은 은퇴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홍목사가 1991년 퀸즈의 우드사이드에 청암기념감리교회를 개척할 때 동시에 설립한 기관이다. 한국의 저명한 신학교육자였던 청암 홍현설 목사를 기념하고 그의 교육정신을 이어받아 기독교의 발전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암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학장을 25년간 역임하면서 60년대 한국신학을 주도하면서 신앙과 교회의 조화를 위해 힘써 온 인물로 지난 90년 작고했다. 그는 오랜 교육생활을 통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 40대 이상의 감리교 목사들은 거의 전부가 그의 제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는 또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서울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이사장을 맡아 봉사하기도 했다.
홍목사가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을 나와 감리교 목사가 된 그는 물론 청암의 애제자였다. 학교에 다닐 때 제자였을 뿐 아니라 졸업 후에도 자식이 없이 살고있던 청암의 집을 드나들면서 스승을 보살폈다. 그래서 그는 청암의 양자라는 별명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청암이란 호를 딴 아카데미를 만들고 감리교 목사이면서도 초교파적이었던 청암처럼 이 아카데미를 초교파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다.
홍목사는 평남 진남포 출생으로 1.4후퇴 때 월남했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였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 감리교신학교를 나왔고 196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군목으로 6년간 복무한 후 대위로 전역을 했고 전역 후에는 서울시경 산하 경찰서 유치장을 돌며 선교를 하는 경목 활동을 했다. 한편으로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4년 강원용 목사가 수유리에 서울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열 때 서류를 들고 뛰어다니며 개설을 도운 사람이 바로 홍목사이다. 이 아카데미에서 그는 65년부터 76년까지 10년간 간사로 재직했다. 이 경험이 아마 그로 하여금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만들게 했을 것이다.
1976년 그는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처음 정착한 곳은 워싱턴이었는데 자리를 잡기도 전에 뉴욕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 뉴욕에서는 뉴욕한인회의 선거를 둘러싸고 많은 한인들이 한인회의 선거 운영에 반발하여 뉴욕한인연합회를 만들었다.
이 연합회는 김재현 변호사를 회장으로 선출했는데 김변호사는 자신과 친분이 가까운 홍목사에게 뉴욕에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뉴욕으로 옮긴 홍목사는 연합회 사무총장을 맡았고, 그 후 브루클린한인교회의 협동목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1년 청암기념감리교회와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시작했는데 지난 해 4월 교회에서 물러나 아카데미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그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하고 광범한 활동을 통해 한평생 많은 경험을 쌓았다. 보수적인 목회활동과는 조금 동떨어진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의 미주지역 사무국장도 했고 기독교대한감리회 미주선교회의 뉴욕지역 감리사도 했다.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도 했고 교회기관에서 사무책임자의 일도 했다. 행정학을 공부했고 한인단체의 사무총장도 했다.
교계와 세상을 넘나들면서 숱한 일을 겪은 그는 교계에서 초교파적으로 친교가 넓은 것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도 친지들이 많다.그런 그이기에 그의 신학관에는 융통성이 있고 신학과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극복하
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청암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사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학과 현장(교회) 사이의 갭을 메워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암 아카데미의 중심활동인 청암 논단에는 목회자는 물론 평신도들까지 참석한다. 이 청암 논단에는 전문가들이 강사로 초청되는데 지금까지 34회나 개최됐고 이중 두 번은 LA에서, 그리고 한 번은 서울서 개최됐다. 최근에는 거의 매달 한 번씩 열리는데 날이 갈수록 참석자들의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플러싱의 아씨플라자 2층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홍목사는 직접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그는 목회를 은퇴한 후 아카데미의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웠다고 한다. 은퇴 목사들의 단체인 원로목사회를 앞장서 조직한 그의 아카데미 사무실은 은퇴 목사들이 즐겨 찾아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기관이나 마찬가지로 홍목사가 이 아카데미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은 경비문제라고 한다. 지금까지 몇몇 목회자가 그의 일을 도와주긴 했지만 사무실을 유지하고 행사를 개최하자면 태부족일 수 밖에 없기에 홍목사는 호주머니를 털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일을 모두 할 수 있지만 남에게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일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는 홍목사는 최근에 운영비라도 보태자는 생각에서 파타임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인 교계에서 청암 아카데미 사업을 후원하여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솔직히 털어 놓는다.
홍목사의 꿈은 뉴욕 뿐 아니라 한인교회와 교인이 많은 LA 등지에도 분원을 설치하여 청암의 뜻에 따라 교육사업을 확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은퇴 목사인 그의 꿈은 기독교 목사로서 뿐 아니라 스승의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인생의 만년에 꾸어보는 아름다운 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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