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공부 잘 하기
■쓰기 가르치기
한 초등학교 클래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반은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구석에선 5~6명이 무엇에 관해 토론을 하는지 떠들고 또 한 그룹은 그래프를 그리느라고 열심이다. 그런데 한 구석에서 한 학생이 그림을 그리는지 혼자 바쁜 것 같아 보였다. 필자가 옆에 갔는데도 눈길 한번 안주고 열심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무엇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필경 무슨 문제가 있는 학생일 것이라고 혼자 단정을 내리고 담임 선생님께 ‘저 학생은 왜 혼자 그림만 그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그 학생은 지금 북 리포트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그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는 중이지요…’라면서 선생님은 그 학생이 했다는 리포트도 보여주었다. 참 놀랍게 잘 쓴 글이었다. 더 자세히 보니 그 학생은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말을 녹음기에 녹음하고 있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작문시간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멍하니 혼자 앉아 있었던 일, 책 읽는 것까지는 좋은데 또 독후감을 써야 하는지… 지겹기 그지없어 독후감 쓰는 부담 때문에 책 읽는 것까지도 싫던 일! 이런 독후감이 아니면 고작해야 어떤 지정된 토픽을 주면 거기에 맞추어 읽는 사람은 선생님이셨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보다는 선생님이 주는 그 점수를 위해 썼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또 점수도 내용보다는 철자법, 문장 구조 등에 그 중점을 두었다.
미국에서도 종전에까지만 해도 그 비슷한 재래식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미국 교육의 변천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1894년 The Committee of Ten Reports(Burrows, 1976)에 글 쓰기는 주로 외우는 일, 문법, 문장 구조, 베끼는 일에 그 중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1917년 The Hosic Report의 내용을 보면 ‘학생들의 작문은 그들의 실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처럼 여기저기에서 획기적인 개혁이 ‘작문’ 교육에 일어나야 한다고 했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작문을 재래식으로, 주어진 토픽, 문법, 스펠링 등에 중점을 두어 가르쳤었다.
1. 글 쓰기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러나 1960년대에 와서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언어심리학자 레브 바이갓스키(Lev Vygotsky)는 “학생들의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 행해진다. 그러므로 글 쓰기도 그 생각의 연속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1968년 미국에서는 제임스 머펫(James Moffet)이 그의 유명한 저서, The Teaching the Universe of Discourse (1968)에서 ‘학생들의 생각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할 때 그 능력은 그 네가지를 잘 할 수 있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네 가지를 좌우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하면 읽기는 생각이 커갈수록 잘 읽게 되고, 또 잘 읽으면 생각도 커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려면 문장 구조, 배열, 아름다운 표현, 문법, 철자법보다는 그 뒤에 숨은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노력이다.
영국에서도 제임스 브리튼(Jame Britton)이 고교생들의 글 쓰기를 오래 연구해 왔었다. ‘지식이란 창고에 쌓인 곡식 같이 우리 두뇌에 들어와 쌓여져 있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Fulwiler, 1987b). 지식이 창고에 쌓아둔 곡식 같이 우리 두뇌에 그대로 쌓아져만 있으면 시간이 갈수록 곡식이 그 신선함을 잃듯이 두뇌의 지식도 잊어버린다. 주입식으로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시험을 본 뒤 그 얼마나 많은 단어를 잊어버렸나! 도널드 머리(Donald Murry)는 학생들에게 ‘글을 쓸 때는 문법이나 철자법… 등의 스킬에 그 중점을 두지 말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돈하고, 그 생각을 통하여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가 지적한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은 바이갓스키가 한 말과 다르기는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같은 말이다. 바이갓스키는 ‘생각을 글로 쓴다는 말은 흐리게 갖고 있던 생각(inner speech)마저도 글로 표현할 때 명확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명확한 것이 잘 되면 마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같이 된다’고 했다. 머리의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바이갓스키의 ‘희미한 생각이 명확해진다’는 말은 비슷한 개념인 셈이다.
러시아의 바이갓스키나 미국의 머펫, 머리, 영국의 브리튼 등 거물들의 업적이 여기 저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부터는 미국의 교육계도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학생들의 작문을 많이 모아서 스킬을 가르쳤다. 도널드 그레이브스는 학생들의 쓰기에 관한 연구를 한 결과 글 쓰기는 어떤 규칙, 문장 구조, 문법을 많이 안다고 잘 하는 것이 아니며 글이란 개인의 스타일에 달렸다고 했다. 브리튼의 연구(Britton, 1973, 1978, 1986)에 따르면 학생들의 쓰기 능력은 주로 선생님들이 어떤 숙제를 내주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했다.
2. 쓰기를 가르칠 때 크게 변하게 된 계기-1974년 UC버클리가 정부에서 기금을 받아 Writing Project를 시작하였다. 이 연수는 제임스 그레이 교수가 주도한 것인데 목적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글 쓰기의 과정(process of writing)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용의 초점은 글 쓰기에는
과정이 있고 또 이 과정은 어떤 단계(stages)를 통과한다는 것에 있었다.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 자신도 반드시 글을 써야 했었고 자기네 스스로도 글을 쓰는 동안에 그 어떤 과정이나 단계를 통과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글 쓰기를 단순히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신들이 직접 쓰면서 쓰기에 대해 배웠다. 1974년 당시에는 이런 연수 자체가 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연수가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참가 교사들이 각자 자기네 학교에 돌아가서 같은 연수 내용을 동료 교사들과 반복 실행하여 교사들이 쓰기란 그 결과가 중요한 것보다는 쓰기의 과정이나 그 단계들이 중요한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서론에서 소개한 초등학교 클래스에서 한 학생이 북 리포트(book report,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독후감)를 쓸 때 그림을 그리며, 색칠만 하는 것 같이 보였으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녹음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사실을 소화하여 그 것을 자신의 이해로 만드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예> 그 학생이 읽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높은 산으로 등산을 가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가는 도중 밤이 될 무렵에 산에 있는 안식처(half-way house)에 머무르게 된다. 그곳은 등산객들을 위해 저녁,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쉬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다. 30명이 함께 등산을 떠났는데 떠날 때는 모두 미지의 여정에 가슴 설레며 열심히 시작을 했지만 이 안식처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난 뒤엔 ‘하루만 더 쉬자’는 사람도 생겼고 어떤 이는 ‘그 높은 산을 올라가 봐야 그렇고 그런데 왜 가느냐?’고 안식처에 주저앉으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만 모든 것을 뿌리치고 새벽에 떠나는 광경을 녹음을 한 뒤에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된 이 학생이 자기 자신의 생활에 비추어보면서 남들이 다 극장 가자고 할 때, 친구들이 담배를 권할 때… 이를 뿌리치는 자신의 갈등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은 자신들의 일상이 책 속의 등산객들과 겉으로 볼 때는 거리가 먼 생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주어진 사실을 갖고 자신의 이해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이러기 위해서는 그 학생은 물론 누구나 많은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전정재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