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스포츠 기자로 우뚝
LA 타임스 등 38년간 스포츠 언론인 외길
볼링 전문기자 명성 .... 명예의 전당에
미주 한인 100년의 역사는 낯선 미국 땅에서 일궈낸 피땀과 눈물, 고난과 보람의 드라마였다. 한 세기전 하와이 노동 이민자로 건너와 사탕수수밭을 일군 이민 선조에서 출발해 이제 ‘코리안’의 이름으로 미 주류사회에 우뚝 서기까지 100년의 역사 속에는 도산 안창호를 비롯 서재필, 새미 리, 김영옥, 신호범 등 숱한 영웅들이 있었다. 그러나 도도한 미주 한인사의 한 줄기를 담당해 오면서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들도 많다. 이에 본보는 이민 10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묵묵히 코리안의 이름을 빛내온 숨은 이민사의 인물들을 발굴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들 중에는 50년대 ‘LA미러’지 스포츠 기자로 아시안 최초로 ‘남가주 볼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조 류(Joe Lyou)씨도 있고 한인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와 쿠바에서 뮤지컬 가수로 명성을 떨친 프로렌스 안씨도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미주 이민 100년을 다시 돌아보고 또 다른 100년을 조망해 본다.
고된 노동과 타향살이의 외로움에 시달렸던 대다수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배움의 길을 포기한 채 독립자금을 모으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초기 이민자의 2세들은 한인타운이 생기기 훨씬 전인 40년대부터 사회 전분야에서 활동했다. 아직까지 이들의 삶에 대한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초기 이민자의 자녀들은 주류사회에 한인을 알렸고, 현 한인사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회적 차별을 뚫고 미 주류 언론에서 근무한 최초의 한인 스포츠 기자 조 류(83)씨도 한인의 위상을 드높인 이들 초기 이민자 후손 중 한 명이다. 그는 1950년대 LA타임스에서 발행하던 석간지 ‘LA미러’에서 스포츠 기자로 일하며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볼링기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 뒤 ‘캘리포니아 볼링 뉴스’ 기자를 거쳐 ‘퍼시픽 볼러’의 편집장 겸 발행인으로 재직했고, 1988년 은퇴할 때까지 38년 동안 스포츠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90년 ‘남가주 볼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지난 1989년 세상을 떠난 누이 베티 류 여사도 전국 방송에서 근무한 최초의 한인 기자로 추정된다. 그녀는 LA 언론인협회(Great LA Press Club) 부회장을 역임했고, 뉴욕으로 건너가 NBC 방송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류씨의 부모는 중가주 농장지대의 과일과 야채를 LA로 운송하는 트럭 비즈니스에 종사한 최초의 한인이었다. 아버지 류성숙씨는 1905년 미국에 건너왔고, 사진신부로 추정되는 어머니 헬렌 방 여사는 1915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미국에 건너왔다. 헬렌 방 여사는 도산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와 절친한 친구였다. 조 류씨를 임신했던 모친 헬렌 여사가 친구 혜련 여사를 만나기 위해 안창호 선생 댁에 놀러갔다 산통을 느껴 류씨를 그 곳에서 낳았을 정도다.
류씨는 "어른들은 항상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셨고, 도울 방법을 논의하셨다"며 "이민 1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초기 2세들은 우리의 후손들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이민역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회고했다.
가디나의 조용한 주택단지로 찾아가 만난 한인 최초의 스포츠 기자 조 류(Joe Lyou·83)씨는 10년전 부인과 사별한 뒤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988년 은퇴 후에도 볼링잡지 등에 글을 기고하느라 관련 자료로 어지럽혀진 컴퓨터 책상을 제외하고는 여느 노인의 집과 다름없었다. 벽을 가득 채운 자신과 가족의 사진의 사연을 설명하던 류씨는 "어른들은 항상 조국을 걱정했고, 조국의 독립을 도울 방법을 논의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1905년 미국에 건너온 류씨의 아버지 류성숙씨는 임페리얼 밸리의 농산물을 LA마켓에 운반하는 트럭운전사였다. 평양 출신인 부친은 서울의 장로교 목사집안에서 태어나 이화여전 졸업 직후인 1915년 미국으로 온 모친 헬렌 방씨와 결혼했다. LA에 둥지를 튼 류씨의 부모는 훗날 한인 최초의 언론인이 된 누이 베티 류씨와 조 류 씨를 포함해 3남5녀를 낳았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다른 한인들처럼 흥사단을 드나들며 조국 광복을 위해 일했다.
당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집이 흥사단 처소였는데 특히 모친 헬렌 방씨는 도산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와 친한 친구여서 왕래가 더 잦았다고 한다. 류씨가 태어난 곳도 바로 도산의 집이었다. 류씨는 "당시 갓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들은 거의 대부분 안창호 선생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어머니도 그 집을 자주 드나드셨다"며 "내 출생기록표의 주소가 당시 안창호 선생댁 주소로 돼 있다"며 허허 웃었다.
4살 때부터 부모를 도와야 했을 만큼 생활이 어려웠던 류씨 가족은 다운타운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던 한 한인 가족의 집에 들어가 살았고, 그 곳에서 식품점집 아들 김영옥을 만났다고 한다. 동갑인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좋은 친구가 됐고, 8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벗으로 남아있다. 류씨는 "나는 기자로 편하게 살았지만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참 많은 풍파를 견뎠다"며 친구의 힘들었던 삶을 안쓰러워 했다.
USC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그는 1949년 학교를 졸업한 뒤 1년 동안 주간지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기자의 꿈을 안고 1950년 LA타임스에 입사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일은 그저 복사나 하는 것이었다. 2차 대전으로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던 시대였기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는 "당시 아시안이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본체만체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타임스에서 석간지 ‘LA미러’에서 스포츠 섹션을 시작하면서 기자를 구했고, 류씨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던 경영진에서는 그를 권투와 볼링 기자로 임명했다. 그는 "많은 경기를 취재했지만 하와이 출신의 한인 복서 ‘와일드 캣’ 필 김과 ‘골든 보이’ 아트 애라곤의 주 챔피언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필은 인기가 좋았는데 그 경기에서 진 뒤 도박에 빠져 우울하게 삶을 마감했다"고 회고했다.
기자로 치자면 손위 누이 베티 류씨가 자신보다 더 대단했다는 게 류씨의 말이다. 한인 최초의 주류언론인으로 LA미러와 뉴욕 NBC에서 기자로 명성을 떨친 그녀는 LA언론인 협회 사상 첫 번째 여성부회장을 역임했고 전국 규모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단다. 사실 그녀가 승승장구한데는 4형제 모두 기자로 유명했던 남편 로드니 보이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LA지역 통신사인 CNS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했던 남편을 돕기 위해 CNS에서 첫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NBC를 그만둔 뒤 베티 류씨는 리차드 마샬과 재혼해 뉴욕에서 ‘마샬 플랜’이라는 홍보사를 운영했다. 1989년 세상을 떠난 그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일보 영문판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4살 때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일에만 60여 년을 일에 묻혀 산 그는 이제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뿌리인 한인 커뮤니티에 무언가를 환원하기를 원한다. "1995년 한미박물관이 개관기념으로 대형 사진전을 열었는데 거기서 부모와 누이의 사진을 보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고 밝힌 그는 1998년 한미박물관이 문 닫을 때까지 줄곧 봉사활동을 했다. 한미박물관이 곧 다시 문을 연다고 알려주자 류씨는 "참 잘한 일이다. 이제는 문 닫는 일이 없이 잘 운영되면 좋겠다"며 기뻐했다. 류씨는 "우리세대는 가난했지만 후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았다"고 강조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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