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입장
"실질적 양자회담… 핵문제 본질 논의"
북한은 베이징 회담을 명실상부한 북미 양자회담으로 규정하고 체제보장 문제를 우선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서 핵 문제의 해결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이 논의될 것”이라는 1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말은 이 같은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핵 파문 직후부터 북한은 불가침조약 체결을 미국에 요구하며 체제안전보장이 핵 문제 해결의 근본방안이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펼쳐왔다.
북한 보도 기관들이 “이라크전이 강력한 전쟁 억제력의 보유 필요성을 일깨워줬다”고 수 차례 언급해온 점에 비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바뀌지 않을 경우 ‘핵무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내비치며 강공책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폐연료봉 재처리와 관련한 오역 논란도 이 같은 전략에 앞서 관련국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ㆍ일본의 다자회담 참여와 관련,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북한 유엔대표부의 관계자는 22일 “핵문제는 조미 양국간 협의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조선 적대정책을 과감히 바꾸면 특정한 대화형식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점에 비춰 한국 등의 참여 문제를 협상카드로 쓰며 유연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라크 전에서 미국의 힘을 충분히 확인한 북한이 예상을 뒤엎고 핵 폐기 원칙을 수용하는 등 전향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입장
"초기단계 회담… 유인책은 없을것"
미 정부는 북한 핵의 영구적 폐기를 위한 ‘다자 압박’의 틀이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베이징 3자 회담의 의미를 두고 있다. 미국은 궁극적으로‘검증가능하고 다시는 뒤집을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려 한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3자 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하면서 “이번 회담은 그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그러나 “우리는 그 목표를 위해 북한에 어떤 유인책도 제공할 준비가 안돼 있다”고 말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보상책이 제시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다만 미국은 북한과의 획기적 관계개선 조치를 담은 ‘대담한 접근안’이 다자 대화의 끝자락에 실행될 수 있음을 내비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은 북한의 선(先) 핵 폐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할 것이다.
3자 회담의 확대도 미국의 주장할 핵심 의제다. 미국은 3자 회담에 한국과 일본을 참여토록 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국제적 강제력을 높이는 방편이자 타협 후 보상문제를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바우처 대변인은 “한국과 일본의 참여가 실질적 문제들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실질적 문제의 핵심은 물론 ‘돈 문제’다. 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 수순은 북한의 핵 개발 포기와 미국의 북한 체제보장, 한국 일본의 대체 에너지 제공 및 경제 지원으로 귀결될 가능성기 때문이다.
■ 3자회담 대표 누구
리근-5년동안 유엔근무 미국통
켈리-대북관계 총괄·방북 경험
푸잉-장쩌민 영어통역 여성관료
리근 북한 대표단장은 외무성 미주과장, 미주국 부국장을 거쳐 1997년부터 5년간 유엔 대표부 차석대로 활동하다 미주국 부국장으로 복귀한 미국통이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재학 중 입대해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압록강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군수장비 수입업무 등을 맡아오다 89년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탈북자들은 리 부국장이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측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대북관계를 총괄해온 실무 책임자로 지난해 10월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했다.
켈리와 함께 방북했던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게리 노스 합참 준장, 주한 미대사관 정무참사를 지낸 데이비드 스트로브 국무부 한국과장, 조디 린 국방장관실 북한담당 수석국장 등은 이번 회담에 참여한다. 대북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 역학관계를 반영하듯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이 망라됐다.
중국측 단장 푸잉 외교부 아주국장은 네이멍구 출신의 여성 관료로 북미간 중재에 적격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베이징외국어대를 졸업한 그는 덩샤오핑 장쩌민 국가주석의 영어통역을 담당했었다. 특별한 배경 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한 외교부내 대표적 여걸이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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