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에서 가장 크고 유서 깊은 도시이나 앞다퉈 새로 개발되는 깨끗하고 널찍하고 쾌적한 도시들의 뒷전에 밀려온 샌타애나가 오렌지카운티의 예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샌타애나가 한창 범죄와 가난으로 악명 높았던 1980년대 중반, 다운타운에 ‘웨스트코스트의 소호’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나온 샌타애나 출신 사업가의 말이 설득력을 더해가며 10여년 전부터 예술가들도 모이고, 시정부와 관련 단체들도 협조하면서 오늘날의 ‘아티스츠 빌리지(Artists’ Village)’가 형성되고 7년 전부터는 다달이 첫 번째 토요일 저녁 7시부터 오픈하우스를 열고 있다.
샌타애나 아티스츠 빌리지의 중심은 브로드웨이와 2가가 만나는 곳이다. 1920년대에 상가로 지어진 건물을 외부는 보존한 채 내부를 개조, 칼스테이트 풀러튼의 미술대학원 분교 겸 기숙사, 작업실을 겸한 ‘그랜드 센트럴 아트 센터’와 역시 1920년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 ‘산토라 빌딩’이 마주보는 2가의 한 블록이 차량 통행이 금지된 예술의 광장이다.
이 두 건물 외에 브로드웨이 길 건너 엠파이어 빌딩과 시카모어 길 건너 2가의 OCCCA, 4가의 스퍼전 빌딩에 현재 40~60명의 예술가들이 살면서 창작하고 있고 산토라 빌딩에는 또 여러 화랑과 극단등도 입주해 있다. 이들 기존 건물들뿐만 아니라 주거 및 작업 공간을 겸한 ‘아티스츠 워크 로프트’의 제 1단계 신축도 최근 마무리되었다. 1400~2200 스퀘어피트 규모로 2004년까지 3개 빌딩 신축이 결정되어 있고 앞으로 1~2개월 이내에 서너개의 개발 계획이 더 시에 접수될 예정이라는데 현재 가격은 40만달러 내외다.
욕의 소호, 첼시나 시애틀, 포틀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험한 동네라도 예술가들이 모여 살게 되면 주변이 고급화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 결과로 렌트가 올라 몇 년 지나면 돈없는 예술가들은 쫓겨 나가는 것이 상례지만 샌타애나에 예술위원회를 만들어 오래 위원장으로 일하며 아티스츠 빌리지를 세운 장본인 단 크립은 예술을 통해 샌타애나의 재건을 꿈꿨고 그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빌리지를 중심으로 바워스 뮤지엄, 디스카버리 과학센터, 오렌지카운티 예술고등학교등 오렌지카운티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들었던 것이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오픈하우스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열린다. 그랜드 센트럴 아트 센터와 OCCCA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산토라 빌딩의 지하, 지하 화랑들도 모두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날 오프닝 리셉션을 하는 전시회가 많으므로 어딜 가든 와인, 소다등 음료와 치즈와 비스킷, 과일등으로 조촐한 상이 차려져 있어 이럭저럭 눈과 입을 함께 즐겁게 할 수 있지만 2가의 예술광장 양쪽에 자리잡은 3개의 식당들도 모두 만원이다.
샌타애나 아티스트 빌리지의 앵커중 하나인 그랜드 센트럴 아트 센터는 1999년에 문을 열었다. 1924년에 브로드웨이부터 시카모어까지 한 블록에 걸쳐 지어진 4만5000스퀘어피트 면적의 긴 유리와 벽돌 건물의 외부를 복원하고 내부를 개조해 샌타애나시가 칼 스테이트 풀러튼에 10년동안 연간 1달러에 리스해 준 것. 1층과 지하엔 작업실과 강의실, 2층엔 27개의 주거 공간을 갖춘 이 건물은 이 학교 미술대학원 학생들이 살며 작업고 있고 1층의 3000스퀘어피트가 넘는 전시실은 이 센터에서 머물며 작업하는 방문작가들의 프로젝트 전시실과 다달이 바뀌는 대여 및 판매 전시실, 현대 미술과 건축, 디자인에 중점을 둔 주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5일에도 ‘핫 포 글래스’라는 유리 공예 전시회 외에 비디오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지은 ‘블랙 박스’ 극장에서는 ‘7주동안 6부스’라는 비디오 작품 전시회의 오프닝이 있었고 이밖에 오렌지카운티 고교생들의 사진 작품, 레지던트 아티스트 작품등 볼거리들이 많았다. 판화의 대가 진 로리건의 ‘워터마크 프레스’도 이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다.
그랜트 센트럴을 나와 시카모어 길을 건너면 오렌지카운티현대미술센터(OCCCA)가 나온다. 화가가 운영하는 비영리 갤러리로 남가주 화가들의 자유로운 작품 전시에 중점을 두는 OCCCA에서는 비디오/영화 작가, 사진작가. 입체 시각 예술가. 행위 예술가, 작곡가 및 문필가등 모든 예술가에게 문을 열고 있다. 6300 스퀘어 피트 공간에 이날 개막한 작품전은 개리 비요르크룬트의 디지털 사진전이었다.
다시 연두색 새 싹이 돋고 있는 시카모어 나무가 늘어선 2가 길 그랜드센트럴 건너편의 산토라 빌딩 아래 2개의 식당 사이로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로 들어서면 여러 개의 화랑들이 각자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현재 다양한 색채의 곡선 문양으로 이루어진 ‘알함브라 시리즈’를 제작중이라는 마이클 마스의 화실겸 화랑으로 입구 쪽에는 어엿한 완성된 그림들이 걸려 있지만 안쪽으로는 물감과 이젤, 캔버스, 붓들이 작업실임을 알려주는 공간에 티셔츠와 바지에 자그마한 물감 자국이 가득한 작가까지 멋지게 어울려 가장 예술가촌에 온 느낌을 주었다.
산토라 빌딩에는 이밖에 1층과 2층에도 화실과 화랑이 많고 브로드웨이 길 건너 엠파이어 빌딩 2층에도 작가들의 작업실을 볼 수 있다. 거기서 4가까지 조금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스퍼전 빌딩 2층에서는 행위 예술가와 영화작가. 비디오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작품 발표회가 한창이었고, 발표회가 끝나면 음악과 춤으로 한바탕 뒤풀이를 한다고 문 앞에 게시해 놓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걸어다니는 작품 같은 옷차림을 한 남녀, 막연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도무지 멋이라곤 없어 보이는 화가등 사람 구경도 재미있고, ‘집시 덴’’멤피스’’팬지아’등 식당들은 노천 좌석까지 넘치도록 사람들로 가득하다. 산토라 빌딩 아래 식당 팬지아의 노천 좌석 한구석에는 ‘재즈 어택’이라는 이름의 3인조 악단이 계속 흥을 돋구는데 연주 솜씨가 꽤 좋아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듣는 가운데 한 커플은 오래 오래 춤을 추고 있었다. 아직 서머타임 실시 이전이라 컴컴하고 시간이 가면서 바람도 차졌지만 싹이 돋아나는 시카모어 나무 아래, 재즈와 미술과 음식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밤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www.aplaceforart.org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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