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로마제국이 멸망한 해는 언제인가.
1)서기 476년 2)1453년 3)1991년 4)멸망하지 않았다.
한국의 대입 수능시험에 이 문제가 나왔다면 1)번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로마의 서방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고, 이탈리아가 게르만족의 지배로 떨어진 것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이 맞는 것일까.
군사국가인 로마는 단일 황제가 통치한 시기도 있었지만, 집정관이든 황제든 통치권자가 두명 또는 세명, 때론 네명이 된 적이 흔했다. 2두, 3두 정치란 바로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던 로마 제국은 여러명의 통치자로 하여금 군대를 나눠 지휘하게 했다.
오도아케르는 서방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동방 황제에게 귀족의 이름으로 이탈리아 경영권을 달라고 했다. 동방 황제 제논은 당장에 이탈리아를 공격할 여유가 없었지만, 또다른 이민족 출신 장군 테오도리쿠스로 하여금 오도아케르를 멸망케 했다. 60년후 동방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탈리아를 되찾았다.
역사가들은 서로마와 동로마를 구별, 서로마에 정통성을 부여했다. 고대에는 로마 동쪽의 그리스, 이집트, 터키가 세계의 중심이었고,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은 변방이었다. 중세에는 5명의 주교중 한명인 로마 교황이 세력을 확장하고, 서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역사가들이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서방 황제의 몰락을 로마제국의 멸망시기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당대의 로마 제국 사람들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 제국의 일부가 이민족의 수중에 떨어졌을뿐 로마 황제는 그후에도 1,000년의 명맥을 이었다. 그렇다면 서유럽 역사가들이 규정한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함락당한 1453년이 로마제국의 멸망시기가 아닐까.
로마제국이 멸망한 시기가 언제이든, 유럽인들 마음 속에는 로마의 환상이 남아있었다. 서기 800년 교황은 샤를마뉴 대제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인정하는 칙서를 내려 서로마 제국을 부활시켰다. 동로마가 망한 후에 그리스 정교를 이어받은 러시아 지식인들은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고 믿었다.
로마 제국의 잔상이 게르만족과 러시아족으로 건너간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서로마 제국을 제1로마 제국, 동로마를 제2 로마제국, 그리고 구 소련을 제3로마 제국으로 불렀다. 로마 제국의 한갈래로 자부했던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에 해체됐다. 그렇다면 이제 서양인들 마음속에 로마의 환상이 모두 깨어졌을까. 바로 제4로마 제국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고, 마침내 두 밀레니엄 전의 로마 제국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로마의 법이 세계의 법이었다면, 미국의 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고 있다.
로마 문화가 그리스 문화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 대중적으로 재창조했듯이 미국도 세계 각국의 우수한 문화와 인재를 받아들여 팝송에서 청바지, 헤어스타일,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리스어의 변종인 로마어가 세계어가 됐고, 영국어의 방언인 미국어가 세계어다. 로마는 각지에 군대를 파견했고, 미국도 세계 200여 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군이 3주만에 바그다드를 함락, 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왔다. 로마의 서방 황제가 게르만과 그 일파인 프랑크 족과 싸우는 동안에 동방 황제는 바그다드 인근에 수도를 둔 페르시아와 교전을 벌이는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물론 2,0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로마 제국과 미국을 비교할 수는 없다. 로마 제국은 점령한 땅을 식민화했지만, 미국은 친미 정권을 수립하고 권력을 넘겨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고, 이라크에서도 과도정부 수립이 추진되고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로마 제국이 멸망한 시기는 언제인가. 바그다드의 사담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한번쯤 생각해볼 의문일 것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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