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했던가. 한반도를 바라보는 중국의 전통적 입장 말이다. 입술(脣)이 없어지면 이(齒)가 시린 법이다. 완충지역 없이 적대적인 세력과 바로 국경을 대하게 되는 상황을 중국은 극히 꺼린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통일을 결코 바라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다. 자칫 북한이라는 입술이 없어질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분단 현상유지가 중국으로서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뭐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본래 그런 입장이었으니까.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자회담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입장 변화 표명이 나오자마자 북경이 중재자가 돼 미국과 북한이 자리를 같이 하는 3자회담을 한다는 발표다.
북한의 도발로 위기가 발생할 때 중국은 항상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 핵위기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전을 전후해 그런데 중국의 행보가 몹시 빨라졌다. 웬 갑작스런 변화인가.
“이라크 전쟁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도 방관만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모종의 절박감이 중국 내에 팽배해지고 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가 한 말처럼 들린다. 그게 아니다. 미언론에 인용된 중국 교수의 말이다.
언제부터 중국의 지식인들이 민감한 외교문제와 관련해 서방 언론에 자유로운 논평을 할 수 있게 됐을까. 아직은 아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북경 인민대 교수의 발언은 의도가 있는 애드벌룬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얼마 전부터 북한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논평을 해왔다. 그 중에는 미국내 강경파, 즉 신보수주의자 입장과 비슷한 견해도 노정되고 있다. ‘북한을 다자회담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또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경제제재는 물론이고 군사적 옵션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게다가 ‘김정일 이후 사태’까지를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오는 판이다. “북한 붕괴에 대비해 중국은 고위회담을 통해 국경안보에 대한 확실한 담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미군은 중국 국경으로부터 빨리 철수하고 대신 다국적군이 주둔하도록 해야 한다. …난민은 유엔이 책임져야 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중국의 입장이 변했다는 강력한 암시 같다. 이와 관련해 나온 말이 ‘바그다드 효과’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불과 3주만에 함락시킨 미국의 승리는 동북아에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의 효과를 불러와 북핵 문제 해결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 함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력도 한층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게 진짜 ‘충격과 공포’로 전해진 것은 그보다는 럼스펠드 발언이다.
“부시는 재임기간에 어떤 방식이든 ‘악의 축’으로 열거된 나라들에 대해 반드시 손을 볼 것이다. 이 점을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존 볼튼 등 미고위당국자들은 분명히 밝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메시지를 ‘악의 축’으로부터 가장 큰 위험에 봉착해 있는 한국만 못 알아 들어왔다. 지난주 미국은 그 메시지를 다시 환기시켰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 최근 논평이다.
주한미군 후방배치 방침이 그 메시지다. 미군을 북한군 포 사정거리 밖으로 빼돌린다는 건 만일의 경우 북한에 대해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신호다. 럼스펠드 발언을 통해 이 메시지가 처음 발표됐을 때 중국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행보가 빨라졌다. 입술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새삼스런 상황인식과 함께.
북한이 붕괴되거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때 이는 현 중국 체제의 존립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수백만의 탈북자가 발생하거나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중국 경제는 무너진다. 때문에 한반도 사태는 상황에 따라서는 북경정권의 안위와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해서 간접적으로 시그널만 보내던 북경이 결국은 적극 나선 것이다.
애드벌룬은 계속 이어진다. 아주 과격하게 들릴 정도다. 남경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한 중국계 교수의 주장이 그렇다. ‘순망치한’의 논리는 낡아빠진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시대착오적 개념에 포로가 돼 북한을 감싸다가 중국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말을 안 들으면 (미국과 힘을 합쳐)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라는 주문까지 하고 있다. 엄청난 인식의 변화다. 또 안보환경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그나저나 문제는 한국정부의 행보다. 과연 정확한 대응의 수순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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