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13일 항복협상을 주선하겠다는 이라크 부족장들의 제의를 거부한 채 대규모 공중 및 지상 전력을 앞세워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고향이자 추종세력의 마지막 거점인 티크리트에 진입함으로써 이곳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군은 또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미 함락된 주요 도시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약탈 등 각종 범죄행위를 차단하고 파괴된 기간시설 복구를 위해 본격적인 치안활동에 돌입했다.
◇미군, 티크리트 진격
미군은 13일 전투기 및 헬기의 지원을 받아 후세인 대통령 추종자들의 최후 보루로 바그다드 북쪽으로 180㎞ 떨어진 티크리트로 진격, 이라크 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였다.
미 해병대는 이날 탱크 250대를 앞세우고 티크리트로 진입해 시 외곽 지역에서 이라크군 탱크 5대를 파괴하고 최소한 1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미 CNN방송이 보도했다.
미 해병대에 배속된 캐나다인 기자 매츄 피셔는 "중요한 공격이 감행됐다. 해병대는 대규모 코브라 공격용 헬기와 F-18 전투기의 지원을 받았다"며 미군의 티크리트 진격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토미 프랭크스 미군 중부사령관은 CNN 인터뷰에서 미군이 티크리트에서 거의 저항에 직면하지 않고 있다는 최근 보고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미군이 티크리트 외곽 또는 중심부까지 진입했는지, 이 도시가 함락됐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날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후세인은 이라크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티크리트에서도 미군이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있으며 이 지역의 후세인 추총자들은 모두 달아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이날 티크리트 부족 지도자 22명으로부터 후세인 추종 이라크 민병대의 항복협상을 주선할 용의가 있으니 폭격을 중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다.
압둘 아지즈 알 나사리 부족장은 "우리는 항복할 준비가 돼있다. 폭격을 중단시켜달라. 폭격이 멈춘 이후 페다인 민병대에게 무기를 버리도록 설득하는 데 필요한 이틀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새로 투입된 미 보병 4사단 선발 병력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이라크 남부 지역으로 진입했다. 한편 이라크 북부 거점도시인 키르쿠크와 모술을 점령했던 쿠르드족 민병대가 미군이 이 도시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함에 따라 철수했다고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이 밝혔다. 키르쿠크 주민 대표들은 미군과 만나 식수,전기, 가스 공급을 재개해 줄 것을 촉구했다.
◇바그다드 약탈 지속
연합군이 바그다드 등지에서 이라크 경찰과 합동으로 순찰을 실시키로 합의했음에도 약탈 등의 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치안불안에 분노한 시민들이 반미 시위를 벌였다.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 티그리스강의 교량 2개를 재개통하자 이라크인들은 13일 다리를 건너 아직 약탈이 일어나지 않은 티그리스 강서쪽으로 넘어와 알-살람 대통령궁 등으로 몰려가 귀중품들을 닥치는대로 훔쳐갔다.
약탈자들은 이날 대통령궁에 난입해 세수대야와 도자기, 욕조는 물론, 정원 연못의 관상용 물고기마저 훔쳐 갔으며, 일부는 "이곳은 우리가 빵조차 먹지 못할 때 사담 후세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분통을 터트리며 거울을 비롯한 내부 집기들을 부수었다.
이라크 정보부 건물은 약탈 이후 화염에 휩싸였고, 외무부 청사에서도 가구와 에어컨 등 각종 집기를 훔쳐들고 나오는 약탈자들의 모습이 목격됐다.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의 집과 최고의 유물을 자랑하던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최근 약탈된 데 이어 13일에는 희귀 도서들이 소장된 국립도서관이 시민 들의 난입 이후 불탔다.
미군의 바그다드 진격 이후 지난 9일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기대하며 연합군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던 주민들은 불과 나흘만인 13일 범죄행위에 대한 미군의 안일한 대처를 비난하며 반미시위를 벌였다.
AFP통신은 이날 바그다드가 미군에 함락된 후 처음으로 수십 명의 이라크인들이 시내 중심부의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반미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시위대들은 "하나의 신만이 있으며 미국은 신의 적이다. 이라크를 위해 우리의 영혼과 피를 바칠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이들이 든 깃발에는 "부시는 사담 (후세인)과 똑같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또한 이라크 주재 외교공관들의 전쟁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바그다드 시내 한국대사관도 포격과 약탈을 당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바그다드 시내 자드리야구의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3층짜리 한국대사관 건물 벽에는 포격으로 인해 직경 15㎝가 넘는 구멍이 뚫려 있는 등 3개의 포탄 자국이 나 있으며 창문에도 수 십 개의 총탄 구멍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또 건물 유리창이 거의 전파됐고 가구와 사무집기 등도 대부분 약탈되거나 파괴됐으며 대사관 건물 내부에는 부서진 집기와 서류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대사관 정원의 일부 나무들도 손상됐다.
연합군은 반미시위가 격화되자 티크리트를 제외한 지역의 주임무를 전투에서 치안유지로 전환해 이라크 경찰과 합동 순찰을 실시키로 합의하고, 약탈자를 감금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무정부 사태가 일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군은 13일 티그리스강 교량을 건너던 주민 25명을 멈춰 세운 뒤 남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던 3명을 감금, 개전 이후 처음으로 범죄행위에 적극 개입했다.
미군은 또 수도 바그다드에서 방범자원요원 수백 명과 함께 시신 수습을 벌이고 경찰 임무를 대신하고 있으며 열흘 이상 암흑천지가 계속된 도심 전기 공급을 위해 관련 전문가 모집에 나섰다.
미군의 치안유지 노력으로 무법천지 상황이 다소 진정되면서 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이 늘어났으며, 바그다드와 주변 도시들을 연결하는 버스 운행이 재개되는 등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아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날 미 해병대 병력이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저격수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발생했다.
영국군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최근 며칠 동안 약탈이 기승을 부렸던 남부 바스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13일 이라크 경찰과 합동순찰을 벌이고 차량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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