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국 드라마를 보던 중 귀에 들어오는 대사가 있었다. 돈을 많이 번 사업가가 후배 젊은이에게 리더쉽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말이었다.
“리더에도 등급이 있는데 하급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쓰고, 중급 리더는 힘을 쓰며, 상급의 진짜 탁월한 리더는 남의 지혜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단계는 온전히 자기 능력에만 의존하다가 얼마 지나 관록이 붙고 권위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게 되며, 한단계 더 올라가면 나는 가만히 있고 아래 사람들이 지혜를 발휘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리더의 자격 요건이라는 말이 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떠오른 것은 아이들 키우기였다. 자녀양육이야말로 이들 리더쉽을 단계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의존하는 유아기에는 부모가 먹이고 입히며 돌보는 능력만 발휘하면 자녀 양육에 전혀 문제가 없다. 아동기가 되면 제 의견, 제 고집이 생겨서 아이가 떼도 쓰고 말썽도 부리게 되지만 이때까지는 부모라는 존재가 워낙 막강해 자녀 통솔에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청소년기. 상급의 진짜 리더쉽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아이 스스로 지혜를 발휘해 학업이며 교우관계등 자기 일을 처리해나가도록 부모는 너무 나서지 말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한 데 대개의 부모들은 그걸 잘 못한다.
아이는 벌써 어른이 다 된 기분이고, 부모는 여전히 권위와 명령 수준의 리더쉽에 머물러 있으니 갈등과 마찰로 서로가 힘들다. 자녀 앞에서 한번도 권위를 의심받지 않던 나의 말이 어느 순간부터 도무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황당한 경험은 아이가 10대가 되면서 누구나 거치는 부모쪽의 통과의례이다.
최강국의 최고 리더, 조지 부시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쌍둥이 딸들이 이런 저런 행실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내리자 부시대통령은 “딸들 키우는게 전쟁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고 푸념을 했었다.
아이 키우는게 이렇게 힘들다면 자녀양육 능력, 혹은 ‘엄마 노릇’은 그동안 너무 소홀히 대접을 받은게 아닐까. 최근 자녀양육 능력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세상의 엄마들이 묵묵히 해온 ‘엄마 노릇’이 알고보니 리더쉽을 연습하고 훈련하며 터득하는 최적의 기회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두가 여성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진출하면서 생겨난 일이다. 여성들이 정계, 재계등 각계의 지도자로 부하 직원들을 통솔해보니 집에서 자녀들 다루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한치도 양보 안하는 고집불통들을 중재하는 능력, 이해가 제각각인 사람들을 모아 힘을 합치게 하는 능력, 달래고 설득하는 대화능력,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 …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항시 필요한 능력들이다.
그러니‘집에서 논다’는 표현으로 홀대받아온 ‘전업주부’의 경험을 이제는 당당히 경력으로 이력서에 기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쉽을 가질 것인가. 리더란 방향을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부모로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는 방법론. 간단히 말하면 손목을 끌고 가느냐, 스스로 걸어가게 만드느냐의 두가지 방법이 있다.
몇 달전 한국의 한 기업이 직원들 2,000여명을 대상으로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싫은 상사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대로 조직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독불장군형과 부하들을 무작정 억누르는 군림형이었다. 손목을 강압적으로 잡아끌면 본능적으로 버티면서 끌려가고 싶지 않은 것이 아이이건 어른이건 같은 심리 이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의 리더쉽은 ‘햇볕정책’을 닮아야 할 것같다. 절대로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말고, 그저 따뜻하게 사랑의 햇살을 비춰주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외투를 벗게 되는 것 - 시간은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리더쉽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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