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면서 한인사회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운동이 옐로리본 달기 캠페인. 이 운동은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옐로리본과 성조기 배지를 달아주는 운동인데 뉴욕한국일보와 한미민주연합회가 공동으로 벌이고 있다.
이 옐로리본 달기운동이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류사회까지 번지면서 이름마저 생소했던 한미민주연합회가 혜성처럼 떠올랐고 이 단체의 배시영 회장(65)이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다.
한미민주연합회는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한국에서 반미 데모가 격화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반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이로 인해 한인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태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이다. 이 단체는 한인사회의 반미주의와 좌경화를 막으면서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류사회에 인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배회장은 지난 연말에 주위사람들과 이런 취지의 의견을 나누다가 1월 6일 40여명의 인사들을 모아 첫 모임을 가졌고 2월 27일 창립총회에서 회장에 선출됐다.그런데 한미민주연합회가 발족하여 일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을 때 이라크전쟁이 터졌는데 이 전쟁에 많은 한국계 미군들이 참전했기 때문에 그 미군가족을 위로하는 행사를 갖기로 했다. 또 그런 행사를 할려다 보니 무엇보다도 참전미군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라크전쟁이 터진 3월 21일 이 단체는 배회장의 제의로 옐로리본 달기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캠페인을 한다고는 했지만 옐로리본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간부들의 주머니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다. 5일만인 3월 26일 플러싱의 리프만 플라자에서 첫번째 캠페인이 벌어졌다.
한인과 미국인 행인들은 물론 현장에 나온 미국재향군인들과 109경찰서의 경찰관, 미국언론사 기자들도 가슴에 옐로리본과 성조기 배지를 달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옐로리본과 배지를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1차로 제작한 분량이 첫날 하루만에 동이 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호응 속에 한인사회의 각 단체와 업소들이 옐로리본 달기 캠페인에 참가했다. 네일, 세탁, 미용, 델리 등 업계에서 후원금을 전달했고 옐로리본을 받아다가 업소에서 배부했다. 한아름마켓 등 한인업소에서도 대량 제작하여 고객들에게 달아주었다. 이 운동은 미국정치인 등 주류사회에 알려져 뉴욕시의회에서는 4월을 옐로리본 달기 캠페인의 달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 뿐 아니라 올바니와 필라델피아로 이 운동이 번졌고 보스턴과 애틀란타에서도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한미민주연합회는 3월 30일 이라크 파병 한인미군가족들을 초청하여 위안행사도 가졌다.
배회장은 평양 출신으로 해방 후 7살 때 부모를 따라 월남했다. 서울서 자라서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때는 동국대 총학생회장으로 4.19혁명을 주동했다. 그는 전국 33개 대학 총학생회장 협의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내는 등 학생운동권 출신이었지만 대학 졸업후 정계나 사회운동으로 빠지지 않고 당시 조광양말을 경영하던 부친의 사업을 도왔다. 그는 1964년 이 회사의 뉴욕지사장으로 1년간 뉴욕생활을 하기도 했다.그런 그가 뉴욕에 이민을 온 것은 1969년 경영부진으로 회사를 정리하고 새출발을 위해서였다.
뉴욕에 온 그는 당시 이민 초창기의 한인들이 겪었던 온갖 고생을 경험했다. 여섯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해 가발 행상도 했고, 델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프트 샵과 수퍼마켓을 경영하게 되었고 그 후 부동산을 사들여 지금은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한인단체에도 관련하여 88년 제 4대 체육회장을 지냈고 체육회장을 지낸 후에는 한국의 민속씨름대회를 뉴욕에 유치, 2번이나 씨름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제 22대 뉴욕한인회장에 출마했으나 김재택씨와 치열한 선거전 끝에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그 후 한인사회에 나서지 않고 있던 그가 한미민주연합회에 뛰어든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핵문제가 악화되고 한국에서 반미데모가 격화되자 한인들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눈초리가 싸늘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한인이 경영하는 드라이클리닝의 고객이 옆 가게로 옮겨가는가 하면 자기의 건물에 세든 테넌트까지 반한감정을 드러내더라는 것이다. 이거 큰일이다, 이러다가는 한인업소 불매운동까지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자 그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워낙 마당발인지라 많은 한인유지들의 동참은 이끌어낼 수 있었고 특히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한미민주연합회는 주로 이런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 단체의 필립 윤 사무총장 등 비교적 젊은 간부들은 자기들의 본업을 팽개치다시피 하고 단체 일을 열성으로 하고 있다.
한미민주연합회는 미국사회와 한인들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우선 6.25 참전용사들과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뉴욕시 각 보로와 롱아일랜드에 있는 참전용사회에 감사와 우의를 표시하고 어려운 일을 서로 돕자고 제의했다. 그리고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위해 훌륭히 싸웠다는 자부심과 한인들과 맺은 우의를 대이어 물려줄 수 있도록 6.25 참전용사 자녀와 손자, 손녀 장학금제도를 만들었다. 골프대회 개최 등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오는 6.25에 첫번째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한미민주연합회는 한국의 SBS-TV와 함께 한국청년과 한인 2세간의 위성 대담을 추진중이라고 했다.
지난 3월 12일 친북단체인 노둣돌이 한인회관에서 반미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배회장은 곧바로 한인회로 달려가 행사 개최를 무산시켰다. 그는 만약 한인회관에서 반미 친북행사를 했다는 사실이 미국인들에게 알려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했다고 한다. 그는 한인청소년들에게 북한의 현실과 공산주의의 실상을 바로 알려주어야 한다면서 한미민주연합회가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배회장은 미국과 대결상황을 이끌어가고 있는 북한과 좌경화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악화되면 한국의 경제는 물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인사회의 지도자들이 각성하여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도 한다. 이런 일만 잘 될 것 같으면 젊은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2선으로 물러나고 싶다는 그는 나이 탓인지 마음을 모두 비운 듯 했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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