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이 인정받는 연예계… 진한 외로움"
만난 지 꽤 됐다. 차승원(33)을 만난 건 지난 달 26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그는 그날 아침 8시까지 술을 마셨다.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광복절 특사>의 김상진 감독, 현재 개봉 중인 <선생 김봉두>의 장규성 감독, <신라의 달밤> <선생 김봉두>에 함께 출연했던 성지루, 그리고 매니저 등과 함께.
밤부터 아침까지 오로지 맥주 밖에 못 마시는 그가 폭탄주 2잔을 포함해 세어 본 맥주만 40병이 넘었다. ‘몸을 누르면 술이 나온다’는 그에게 맥주를 권하며 유쾌한 수다를 떨었다.
# 예니는 복덩이
차승원은 지난 1월 늦둥이 딸을 낳았다.
사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늦둥이도 아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첫 아들 노마가 너무 빠른 것이지.
“예니가 태어난 후 좋은 일만 생긴다. 상도 받고, 단독 주연작인 <선생 김봉두>의 흥행도 좋을 것 같고(만났을 당시에는 개봉 전이었다. 다만 서울극장을 비롯한 4개 극장에서 그날 밤 미리 개봉했는데 전부 매진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톱 모델에서 탤런트로, 그리고 영화배우로 재도전해 톱 클래스가 된 그의 인생을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승승장구. 이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 역시 그냥 이 자리에 올라선 건 아니다.
# 자신감으로 여기까지 왔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공대 출신이다. 나 역시 집안 분위기에 휩싸여 화학공학과(목원대)를 갔으니…. 이건 아니다 싶어 하고 싶었던 모델이 됐고, 성공했다. 그 성공의 기준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다. 나 스스로 느끼기에 이 정도면 됐다 싶었던 거지.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고 느꼈을 때 연기자로 길을 틀었다. 탤런트를 했을 당시 2000년 3월 <맛을 보여드립니다>까지 3년 동안 딱 이틀 쉬고 일했다. 한계가 느껴졌다. 또 다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영화로 길을 잡았다. 단역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신혼여행>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리베라메> 등에 출연했다. 배우로서 그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신라의 달밤> 때부터.
이후 그는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에 이어 <선생 김봉두>까지 코미디 영화에서 빛을 발했다.
왜 멜로 영화는 하지 않느냐고 난데없이 물었다. “배우는 감독이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라의 달밤> 이후 내가 만났던 감독의 스타일이 비슷해 비슷한 장르의 연기를 계속 한 것이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차승원이라는 존재의 50%는 나 자신이지만, 50%는 만나는 사람들이 만들어준다.
난 언제든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지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선택한다.”
그는 생각을 많이 하는 배우였다. 풀어가는 대화가 거침없었다. 그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사는 것일 터.
“연예인이란 게 그렇다. 대중에게 맞춰가다 보면 늘 엇박자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30대 남자 배우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니 사람들이 따라왔다고 본다.”
# 혹시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가
이처럼 차승원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며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만, 연예인이란 직업은 1등 아니면 인정을 못 받는 곳이다. 1등이 아니라면 2등이나 100등이나 마찬가지다.” 밤에 혼자 일어나 줄담배를 피우면서도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 머리 속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빙빙 도는데 끝내 잘 잡히지 않는 배역에 대한 고민.
“어쨌든 난 배우로서도 성공했다. 성공하니 또 다른 문제가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내 삶이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가 求?”
<선생 김봉두>를 찍으며 강원도 오지에서 배우와 촬영 스태프가 거의 유배되다시피 한 생활. 몇 달간 그런 생활을 하니 마음이 맑아졌지만, 또 한 켠에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잘 살고 싶은 마음.
평범한 30대 남자로서 말하자면,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건 당연한데도 바람 피우는 남자와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눠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더 잘 살기를 바라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을 그 역시 하고 있었다.
배우, 특히 남자 배우들은 30대에 접어들어서야 연기의 폭이 넓고 깊어지는 걸 많이 본다. 차승원의 경우 일찍 결혼해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또 그 만큼 보고 느끼는 게 많아서인지 풀어낼 보따리가 많은 듯 했다.
그가 삶에서 터득한 다양한 표정이 첫 단독 주연작인 <선생 김봉두>에 들어있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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