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꽃비로 깨운다…’영국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작품을 통해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다. 하지만 사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워준다고도 했다.
매년 사월이 되면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한 그가 먼저 떠오른다. 그건 왜일까? 아마도 그가 표현하는 잔인한 달 사월을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생명의 싹을 트게 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일게다.혹자는, 봄은 사월이 되어야 진짜 봄이라는 실감이 난다고 한다. 겨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온갖 풀들이 돋아나 아기자기한 꽃을 피우고 여기저기서 꽃 소식이 들려오는 사월이 진정 이제 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필가 피천득씨는 ‘사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생각은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표현하는 사월의 봄은 이렇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고.
그는 불혹의 40대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살구꽃, 그리고 라일락·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라고.
이처럼 봄을 기다리는 심정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향수인 동시에, 생기 넘치는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또한 40이 넘은 사람들에게 매년 찾아오는 봄, 그 봄은 더욱 성숙된 삶을 지향해야 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봄다운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보다.
진정한 봄을 맞이해야 하는 사월, 뉴욕에는 눈이 내렸다.
초봄의 싸늘한 날씨의 변덕을 잘 이겨내고 활짝 피어오르던 꽃들이 눈에 덮여 고개를 숙였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려던 한인들의 가슴에는 싸늘함을 안겨주었다. 올 사월은 너무도 잔인한 것 같다.꽃피고 새가 우는 따스한 봄날이 오기는 커녕 세상살이가 하 수상할 뿐이다.
요즘 뉴욕일원의 한인사회는 각종 고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경기로 몇 년째 한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걷히지 않고 있다. 불경기의 악순환은 비즈니스를 망가뜨리고, 심지어 가정마저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전쟁도 한인가정에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전쟁에 파병된 자녀를 둔 한인가정들은 자식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언제 파병될 지 모르는 자녀를 둔 부모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으로 불리는 괴질이 전세계를 강타,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과 거래가 잦은 한인 무역인들의 발을 묶어 놓았다.
여기에 지난 7일에는 한파와 폭설을 동반, 한인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인사회 분위기를 더욱 뒤숭숭하게 하는 것이 바로 뉴욕한인회장 선거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단독으로 출마한 뉴욕한인회 회장선거 당선공고의 깔끔한 마무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렇게 된 현실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도 없다는 점이다. 아무도 내 잘못으로 일이 이지경이 됐다고 통감하고 반성하지 않고, 모두가 ‘네 탓’만을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일합방 후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고, 이완용도 아니다.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자는 누구냐. 그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작금의 뉴욕한인회장 선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는 것은 한인 모두의 바램이 아닌가 싶다. 이럴 때일수록 ‘네 탓’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내 탓’도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그렇게 돼야지만 한인사회는 잔인한 사월을 헤치고 나가 진정한 봄을 맞을 것이다.
chye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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