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심기와 자식키우기는 ‘한마음’
한그루 묘목에도 넘치는 ‘생명의 에너지’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시대를 한참 앞서갔던 철학자 스피노자가 남긴 명언. 매해 식목일이 가까워오면 그가 남긴 이 한마디가 떠오른다. 왜 하필이면 사과나무냐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진리였던 시대에 자연이 곧 신임을 깨달았던 그는 만물에 가득한 존재의 진면목을 보았던 선각자였다.
매년 4월5일 식목일은 한국에서라면 법정 공휴일이다. 조선 총독부와 미 군정청의 잔재라는 부정적 해석도 있지만 실은 조선시대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구었던 것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고 청명, 한식과도 겹쳐 나무 심기에 더 없이 좋은 시기니 이를 굳이 부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김동인의 단편 소설에서 주인공 익호는 눈을 감으며 산림 파괴로 온통 흙뿐인 조국의 붉은 산을 떠올렸다.
분명 자연이 좀 더 풍성해지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날이건만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햇볕 좋은 봄날, 들로 산으로 나들이 떠나는 휴일이라는 의미만이 강조된 느낌이다.
산림이 우거진 미국에도 식목일은 있다. 네브래스카주에 청교도들이 모여들던 1800년대.
집을 짓고 마을을 건설하느라 파괴된 자연을 본 깨어 있는 의식의 소유자, 모턴은 산림녹화 운동을 전개하며 1872년 4월10일을 나무의 날(Arbor Day)로 제의했다. 이후 식목일은 그의 생일인 4월22일로 옮겨졌지만 나무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돼 미 전역에서 지구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주말 윤현수(43·무역)씨는 아내 윤성희(42·어린이학교 원장)씨, 그리고 두 아들 용대(15), 용민(9)이와 함께 앤젤레스 포리스트 국유 산림에서 펼쳐진 나무심기 행사에 참가했다.
나무를 심어 자연을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바꾸려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영리 단체 ‘트리 피플’(Tree People)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윤현수씨 가족 외에도 청소년 봉사단체의 회원 100여명이 참가해 1,300여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동그랗게 둘러선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무심기 요령을 들려준 트리 피플 탐 퍼슨스. 나무와 자연을 사랑해 10년전 파트타임 자원봉사로 트리 피플과 연을 맺은 후 이 시대 자연보호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해 4년 전부터는 아예 풀타임 스태프로 들어앉았다.
그가 가르쳐준 대로 나무를 심어본다. 용대가 우유 카튼에 담긴 묘목을 가져오는 사이 삽에 올라타 온 몸의 하중을 실으니 꼭 나무가 심길 만큼의 깊이로 흙이 파진다. 나무의 뿌리가 휘거나 꺾이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후 다시 흙을 덥고 정성껏 도닥거린다.
나무들끼리 최소한 8피트의 거리는 떨어져야 비로소 커다란 나무로 자라날 수 있다고 하니 아무리 함께 사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한정된 자원으로 지나치게 생존경쟁에 시달리다 보면 타고난 마음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아기처럼 여린 묘목이지만 15센티미터 정도 키가 자라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햇볕이 수분을 흡수하지 않도록 몸으로 그늘을 드리워주는 세심한 몸짓 하나 하나가 행여 아플세라 보듬어가며 용대와 용민이를 키워왔던 지난날들과 어쩜 그렇게 꼭 같을까. 나무를 심은 후 양동이로 부은 물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고여있도록 주변에 흙담을 쌓으며 윤성희씨는 나무 심기와 자식 키우기가 결국은 하나임을 체득한다.
우리가 내뿜은 이산화탄소와 탁한 기운이 자연을 파괴할까봐 호흡하기가 못내 미안했던 어렸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호흡의 부산물들이 나무에게는 광합성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니 나무와 사람만큼 애초에 함께 살도록 짝 지워진 좋은 관계가 또 있을까.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를 안고 그 존재를 들이쉬며 수맥을 따라 물을 흡수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느껴본다. 아름답다.
소년에게 쉴만한 그늘과 맛있는 열매를 주었던 나무. 나무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모습과 꼭 닮은 소년에게 자신의 몸을 베어내기까지 커다란 사랑을 보여준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을 돌아보게 만드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 동화이다. 나무를 심은 후 두 아들과 함께 책장을 넘긴다면 그 감동이 얼마나 깊을까 싶다.
바쁜 시간을 내 온몸으로 참여해준 봉사활동만으로도 너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임을 위해 작은 정성을 모으고 싶다는 윤현수씨의 바람을 트리 피플들은 나무처럼 고마워했다. 30년이 넘도록 남가주의 환경 지킴이를 자청하고 있는 트리 피플. 식목일을 앞두고 많은 한인들이 나무를 심고 환경을 가꾸는 봉사 활동에 참가하는 트리 피플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해 본다.
트리 피플 나무심기 이벤트
트리 피플에서는 커뮤니티와 국유림, 공원 등 다양한 로케이션의 나무 심기와 나무 가꾸기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커뮤니티 식수:
▲4월12일(토) 오전 9시~오후 1시. 롱비치시의 California Heights 주변에 60그루의 가로수를 함께 심는다.
▲4월19일(토) 오전 9시~오후 1시. 지구의 날을 맞아 컬버시티의 Prospect Ave.와 Matteson Ave. 코너에 80그루의 가로수를 심는다. 연락처 (818)623-4875.
♠트리 케어(Tree Care) 프로그램:
4월12일(토) 오전 9시~오후 1시. 공사로 파손된 미드시티의 가로수를 함께 손본다. 연락처 (818)623-4841.
♠공원에서의 행사(Park Event):
▲4월5일(토) 오전 9시~오후 1시. Coldwater Canyon Park에 있는 트리 피플의 화원에서 묘목 심기와 옮겨심기 요령에 대해 배운다. 참가비는 없지만 미리 등록을 해야 한다. 연락처 (818)753-4600.
▲4월16일(수) 오후 7시30분~8시30분. 보름달 아래 1시간 동안 달빛 산행 후 야외 원형극장에서의 여흥시간도 마련된다. 회원에게는 무료, 비회원은 5달러. 예약 필요. 연락처 (818)623-4866.
그 외 트리 피플의 다양한 활동과 트리 기부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도네이션을 하려면 (818)753-4600으로 연락하거나 웹사이트, www.treepeople.org를 참고하면 된다. 나무 심는 날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탈수될 염려가 있으니 물을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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