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위력 실종 제구력 난조 자신감 결여
어디가 아팠던 것일까, 아니면 투수로서 개스탱크가 바닥난 것인가.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의 2003년 첫 출격은 참담했다. 출발이 순탄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이 정도로 무참하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날 참담한 결과는 지난해의 악몽을 되살림과 동시에 올 시즌 전체는 물론 박찬호의 커리어까지 걱정해야 할 만큼 짙은 먹구름을 몰고 왔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누구의 눈에도 자명하다. 우선 주무기인 직구가 전혀 위력이 없었고 제구력도 수준 이하였다. 투구폼은 들쭉날쭉해 안정되지 못했고 자신감도 결여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 번 흔들리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악습도 고스란히 되풀이됐다. ‘심적으로 허약한 선수’라는 미 언론들의 지적에 전혀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이 이날 나타난 박찬호의 현주소였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직구 위력의 실종이다. 이날 대부분 직구는 87마일선에 그쳤고 80∼83마일의 배팅 연습용 직구도 몇 차례 튀어나왔다. 이런 볼을 가지고 메이저리그 타자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직구 위력이 없다보니 정면승부를 못하고 코너웍만 노리거나 변화구에 의존하는 피칭을 하게 되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제구력 난조로 이어진다. 이로 인한 자신감 상실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박찬호가 전성기때 모습을 되찾으려면 ‘코리안특급’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시속 95마일의 강속구를 되찾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잃은 구속을 되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힘들다. 수 많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한 번 강속구를 잃으면 기교파 투수로 변신하거나 아예 유니폼을 벗는 것이 이 때문이다. 어깨나 팔꿈치 부상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부터 박찬호의 구속은 전에 비해 시속 3∼5마일이 떨어졌고 첫 경기에선 아예 87∼88마일선으로 느려졌다.
투구폼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박찬호의 어깨가 더 이상 시속 95마일의 강속구를 뿌릴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5년이상 투수로서 엄청나게 많은 이닝을 던진 박찬호이기에 어깨의 수명이 다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결코 무리는 아니다.
경기후 박찬호는 축이 되는 오른다리가 무너져 제구력에 문제가 있으나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투구내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는 6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텍사스 언론 반응
“이젠 박찬호의 사기 진작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팀의
사기가 무너져 내릴 위기다.”
“남은 경기를 한국에서 하게 해 달라고 청원서를 내야 하나?”
박찬호가 시즌 첫 등판에서 참담하게 무너지자 달라스 지역 언론들이 박찬호에 대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일 달라스 모닝뉴스는 박찬호의 이 같은 등판이 앞으로도 이어질 경우 박찬호의 사기가 아니라 팀의 사기가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며 레인저스가 무슨 대책이든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6,500만달러를 투입해 영입한 박찬호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전담캐처까지 데려왔건만 이날 결과는 눈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 시즌 개막전의 완벽한 승리에 고무됐던 분위기를 박찬호가 완전히 말소시켜 버렸다고 탄식도 나왔다.
심지어는 버드 실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까지 박찬호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에인절스 월드시리즈 챔피언 링 수여식을 위해 이날 경기에 참석한 실릭 커미셔너는 프레스박스에 들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박찬호가 오늘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I don’t think Mr. Park has much tonight)”고 코멘트를 한 것.
엄청난 돈을 주고 데려온 박찬호의 침몰은 곧 팀의 몰락을 의미하기에 레인저스는 이제 박찬호가 빨리 제 모습을 되찾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다.
<김동우 기자>
danny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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