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최대 전략가로는 클라우제비츠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12살에 군에 들어가 나폴레옹 군대와의 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조국 프러시아가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러시아 장교로 변신, 퇴각 전술로 러시아 군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가 죽은 후 발간된 ‘전쟁론’은 아직도 군 관계자들에게 필독서로 돼 있다.
서양에 클라우제비츠가 있다면 동양에는 손자가 있다. 실제 저자는 미상이지만 그의 이름이 붙은 ‘손자병법’은 ‘전쟁론’보다 2,000년이나 먼저 쓰여졌으면서도 전쟁의 경제적 효과나 심리전, 첩보전의 중요성에 관한 탁월한 이해 등 그보다 더 현대적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이 클라우제비츠를 연구했다면 일본 전국 시대의 명장 다케다 신겐과 모택동은 ‘손자병법’을 탐독했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을 적은 책이지만 전쟁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전쟁은 국가의 대사며 생사와 존망이 달려 있으니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 등이 이를 보여준다.
이 책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정보를 들고 있다.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자주 인용되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전쟁은 속임수”이므로 적장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도 있다.
이 책에는 또 원정의 위험과 동맹의 중요성, 적진 분열의 필요성도 들어 있다. “싸움터에서 적은 기다리는 사람은 편하고 싸움터로 달려가는 사람은 고달프다”와 “최상의 전법은 적의 계략을 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의 동맹을 깨는 것이며 세 번째가 적병을 공격하는 것”, “아군은 뭉치고 적은 분산시키면 싸우기가 쉬워진다” 등등.
이라크 개전 전부터 미국이 지금까지 하는 것을 보면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적 반 이라크 전선을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고 이라크 군이 뜻밖에 강한 저항을 하리라는 점도 몰랐다. 터키의 동의를 얻지 못해 이라크 군을 분열시키는데 필요한 북부 전선을 여는데 차질을 빚었고 걸프전 때와는 다른 작전을 쓸 것이라는 점을 미리 공포해 ‘충격과 공포’ 효과를 스스로 줄였다.
간단히 끝날 것으로 예상 됐던 이라크 전이 생각처럼 순조롭게 풀리지 않고 있다. 전쟁 직전 체이니 부통령은 TV에 나와 “전쟁은 수주면 끝날 것이고 이라크 국민들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 소리만 나면 이라크 군은 무더기로 항복할 것이며 2주안으로 사담은 죽거나 축출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3주 째를 눈앞에 둔 지금 전쟁이 끝나려면 최소한 수개월, 심지어는 6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미 본토에서 12만 병력이 증파되고 바그다드 인근까지 진군한 미군들은 병참 지원이 제대로 안 돼 하루 한끼밖에 먹지 못하며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직도 미 정부 측 공식 발표는 “다 잘 돼 가고 있다”는 것이지만 어쩐지 뭔가 꼬여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첫 번째 걸프전은 예상을 깨고 지상군이 투입된 지 2주만에 끝났다. 전투 중 미군 사상자도 100명 남짓이었고 전쟁에 대한 국제적 지지도도 지금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승리에 따른 경기 부양효과는 미미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 없는 경기 회복’이 그 후 4년이나 계속됐다.
지금 미국의 화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그 때보다 불리한 점도 많다. 걸프전 때는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하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사담 일파를 섬멸해야 한다. 거기다 민간인이나 미군 사상자를 많이 내서도 안되고 석유를 비롯한 기간 시설을 보호해야 하며 최단 시일 내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전후 복구와 이라크 민주화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기고도 진 전쟁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판이다.
미국 경제는 이미 주택 판매가 급감하고 소비자 신뢰지수가 10년 내 최저로 떨어지는 등 마지막 받침목이던 주택 경기와 소비자 지출이 시들어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카고 제조업 지수 하락 등을 가리키며 이미 제2 불황에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번 전쟁이 지지부진 한 없이 계속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면 부시 재선은 둘째 문제고 세계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올 게 분명하다. “오래 가 득 되는 전쟁은 없다”는 ‘손자 병법’의 가르침을 되새길 때다.
민 경 훈 <편집위원>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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