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세상이 어수선 하기만 하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산과 들에 아무리 고운 꽃이 피었다 한들 아름답게 느껴질까. 지난 주말 조원대(28·요식업)씨와 조미미(30) 씨 부부는 민지와 민서 두 딸을 데리고 글렌데일의 브랜드 공원(Brand Park)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봄기운 가득한 식물원과 정원 다 놔두고 굳이 브랜드 공원을 찾은 것은 공원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도서관이 사라센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적이 되어버린 그들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앞에 하며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주말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닐수 있을 듯 해서였다. 글렌데일 시내와 샌퍼낸도 밸리가 한 눈에 내려다보는 브랜드 공원은 야자수가 시원하게 펼쳐진 입구부터 예사 공원과는 한참 차별화된다.
사라센이란 중세 유럽인들이 이슬람교도를 부르던 호칭. 야훼가 아닌 알라를 믿는 죄는 컸다. 중세 유럽인들의 잣대로 볼 때 그들은 이교도요 이방인. 오늘날이라고 뭐 달라진 게 있을까. 달나라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21세기, 제법 우주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의 꽉 막힌 인식의 습관은 천 년 전에 비해 조금도 나아진 바가 없는 것 같다.
태양 빛을 받아 하얗게 반사된 둥근 지붕의 브랜드 도서관을 보며 두 부부는 지구 반대편 사막 지대에 사는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 본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두 손잡고 나온 것이 그저 좋은지 신이 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민지와 민서의 표정이 해맑다. 두 딸들이 전쟁과 폭력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만큼 이들 부부는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 바그다드 시내에도 어린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번져 나오길 소망한다.
7세기께부터 천 년의 세월 동안 발달된 사라센 건축 양식은 강렬한 지방성과 민족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슬람교의 철저한 우상부정의 교리에 따라 조각이나 회화 장식 대신 복잡한 기하학 문양과 추상적 무늬, 그리고 아치와 건축 모티브의 장식용법이 발달했다. 무하마드의 성묘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그리고 샤자한이 애첩 뭄타즈를 위해 지은 타지마할은 사라센 양식으로 지어진 빼어난 건축물들. 이 리스트에 브랜드 도서관을 더한다 한들 손을 저으며 반대할 칼리프는 없을 터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선율이 떠오르는 하얀 외관은 전형적인 사라센 양식으로 동 인도의 궁전 같은 디자인이다. 회교 사원의 탑처럼 거대한 돔은 태양 빛에 반짝이고 겹겹이 이어지는 아치는 스페인과 무어, 인디안 건축 양식의 멋진 조화를 보여준다.
동양의 신비가 느껴지는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실내는 빅토리아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5개의 침실, 식당, 화장실, 일광욕실, 응접실, 거실, 화실, 음악실로 구성되어 있던 내부는 다마스크 실크 벽과 수공예, 목조, 유리 장식으로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현재 이 공간에는 글렌데일 공공 도서관의 예술과 건축, 음악 부문 장서, 그리고 그 밖의 시청각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이 궁전처럼 화려한 건물이 본래부터 공공도서관이었을 리 만무하다. 브랜드 도서관은 글렌데일의 저명인사였던 레슬리 브랜드가 1904년에 지은 저택으로 엘 미라데로를 그들 부부의 유언에 따라 도서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1956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LA의 지성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됐다.
공공도서관이지만 문화·예술 애호가인 유럽 귀족의 개인 도서관을 찾는 것 같은 감흥이 느껴져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푸치니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모두 섭렵한 이들에게도 벤자민 브리튼의 ‘빌리 버드’나 ‘피터 그라임즈’는 다소 생소한 작품. 얼마 전 LA 오페라에 의해 이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브랜드 도서관을 찾아 타워 레코드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오페라 CD를 돈 한 푼 내지 않고 빌렸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CD를 들으며 충분히 오페라 공부를 하고 공연을 대하니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파리에서 건축 공부를 하는 친구가 그 학교 도서관에도 없는 건축 관계 자료를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해왔을 때도 당장 브랜드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건축 학교 도서관에도 없는 그 희귀한 자료를 대출해서 복사를 떠 익스프레스 메일로 부쳐주었다. 친구가 그 과목을 무사히 패스한 것은 순전히 브랜드 도서관 덕이다.
어디 그 뿐인가. 보고 싶었던 인상파 화가들의 화보과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브랜드 도서관은 진정 메말라 가는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지성의 오아시스다. 31에이커에 달하는 브랜드 공원에는 8마일의 훌륭한 하이킹 코스, 농구장과 야구 필드,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서 있다. 두 딸과 넓은 잔디밭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조원대 씨 부부는 세상에 더 바랄 게 그리 많지 않음을 느낀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계란 조림 도시락도 피크닉 테이블 위에 놓고 먹으니 꿀맛. 책보며 산책하며 보낸 이들 부부의 주말 한 나절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차 오른다.
브랜드 도서관·브랜드 공원
▲개장 시간: 화·목요일은 오후 1-9시, 수요일은 오후 1-6시, 금·토요일은 오후 1-5시. 일·월요일은 휴관. 브랜드 공원은 매일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주소: 1601 W. Mountain Ave. Glendale, CA 91201 Mountain Ave.와 El Miradero Ave와 만나는 곳에 있다.
▲가는 길 : 5번 N. → Western Ave.에서 좌회전해 쭉 북상하면 Mountain St.과 만나는 곳에 공원 입구가 나타난다. 도서관은 브랜드 공원 입구에서 똑바로 올라가면 있다.
▲예술, 음악, 건축 전문 도서관으로 장서 5만권, 정기간행물 126종, CD 10,000장, 음반 30,000장, 비디오 400개, 슬라이드 2만5,000점, 아트 프린트 600점과 악보 200권을 소장하고 있다.
▲16세 이상으로 캘리포니아 주소와 ID만 있으면 누구든지 도서관 카드를 만들 수 있다. 하루 최대 15권의 책과 15장의 레코드, CD 10장, 프린트 3장, 슬라이드 3세트, 비디오 테입 2개를 21일 기한으로 대여할 수 있다.
▲문의 전화: (818) 548-2051.
▲공원과 도서관 모두 입장료는 없고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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