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조심할 것
지난 주 금요일, 친구 두명이 비슷한 때에 생일을 맞아 합동축하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좀 색다른 곳엘 가보자 하여 라이브 공연도 있고 음식 맛도 좋다는 셔먼 옥스의 브라질식당 ‘클럽 리오’에 갔다.
주말 저녁이어선지 사람도 많고 분위기는 매우 들떠 있었다. 우리 일행 4명은 미남 브라질 청년의 서브를 받으며 맛있는 치즈빵과 샐러드를 시작으로, 계속 나오는 10여가지의 고기요리를 실컷 먹었다. 베이컨말이 터키요리서부터 소시지, 각종 스테이크, 갈비, 돼지고기, 닭고기, 거위, 메추리고기까지 기억도 다 안 나는 고기요리에 나중에는 코가 다 물릴 지경이었다. 친구 한명이 이 식당의 고위급 매니저와 친분이 있는 탓에 특별 대우를 받았고, 생일이라고 디저트 플레이트도 화려하게 나와 모두들 기분이 한껏 고조돼있었다.
밤 10시쯤 되자 삼바춤 공연이 시작되었다. 팔등신 미녀 5명이 화려한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해 신나는 삼바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다들 빼어난 미인인데다가 풍만한 가슴과 히프를 선정적으로 흔들며 춤을 추니 모두 넋을 빼고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이 끝날 무렵, 댄서들이 테이블로 다가와 앉아있던 손님들을 양손으로 끌어내었다. 우리는 플로어 맨 앞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무대 가까운 쪽에 있던 나와 한 친구가 끌려나갔다. 무대로 나온 사람들이 댄서들과 어울려 춤을 추면서 둥근 원을 만들고 빙글빙글 돌아가기를 한 5분여. 앉아있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하나둘 합류하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나 혼자 ‘파티의상’이 아니어서 심기가 약간 불편했던 나는 음악이 바뀌자 곧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얼른 일어났다. 내 의자 밑, 발아래 놓아두었던 핸드백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 친구들 의자 밑까지 다 둘러보았는데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덜 떨려오면서 마침 우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매니저에게 퍼스(purse)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너무 당황하더니, 종업원들을 시켜 클럽 문지기에게 지금부터 나가는 손님들을 체크업하도록 지시했다.
당황하기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파티의 흥은 한 순간에 완전히 깨졌고 한 친구는 화장실과 식당의 후미진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 혹시 나의 백에서 돈만 꺼내고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에서였다. 도난 당한 사실이 확실해지자 매니저 자신이 뛰쳐나가 식당 인근의 쓰레기통들을 모두 뒤졌지만 허사였다. 어둡고 소란한 실내, 화려한 공연으로 인해 모두들 정신나간 틈을 타서 누군가 재빨리 백을 들고 나간 것이 분명했다.
속상했던 것은, 요 근래 식당에서 백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나 자신이 조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로 미국식당에서, 때론 고급식당인데도 의자에 걸어두었거나 발 밑에 놓아둔 백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작년에만 세 케이스나 들었기 때문에 이날 나도 백을 내려놓고는 주기적으로 만져보며 확인하곤 했었다. 그런데 잠깐 무대에 끌려 나갔다온 5분 사이에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핸드백 안에는 보통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모든 것-지갑, 셀폰, 비퍼, 자동차와 집 열쇠, 립스틱과 콤팩트, 명함 케이스, 휴대용 돋보기, 회사출입 카드, 몇 개의 볼펜, 그런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지갑에는 얼마간의 현찰과 크레딧카드들, 운전면허증, 각종 멤버십 카드, 아들의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정신을 추스린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친구의 전화를 빌려 남편에게 전화한 일이었다. 크레딧카드들과 은행카드, 셀폰의 사용을 정지시켜야했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는 DMV에 가서 운전면허증을 다시 내고, 자동차 딜러를 찾아가 알람 키를 한 벌 새로 오더하며, 집 현관의 자물쇠를 바꾸는 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백 안에 나의 모든 신상명세와 함께 차와 집 열쇠가 있으니 만일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번잡스럽고 낭패스러운지, 전에도 백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던지라 좀더 주의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에이, 이런 김에 백도 새로 사고, 지갑도 사고 하는거지 뭐, 하며 마음을 달래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식당에 가면 핸드백 잘 챙기기. 독자들도 꼭 조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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