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친지 한분과 통화중 ‘남편들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50대 후반에서 60대의 남성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마다 히스테리컬해진 아내 때문에 고민이 많더라는 것이었다.
아내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원인은 나이든 외모였다. 50대 중반쯤 되면 젊은 시절의 싱싱함은 자취도 찾아볼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그것이 갱년기의 우울한 심사와 맞물리다 보면 인생 자체가 다 허망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아내들이 그 허탈함을 혼자 삭이면 좋으련만 화살을 남편에게 쏟아 부으니 남편들의 고충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평생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냐”로부터 시작해 아내들이 줄줄이 불만을 터트리는데 “이렇게 해줘도 안되고 저렇게 해줘도 안되고…” 남편들은 몹시 힘이 든다고 그분은 전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올인’의 여주인공인 송혜교의 매력을 어느 성형외과 의사가 분석했다. 그는 송혜교의 아름다움의 특징을 ‘천진스럽고 해맑은 청순미’라고 정의하면서 이런 표현을 덧붙였다 -‘바닥의 돌들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얕고 예쁜 샘물’
예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모두 20대에는 돌들까지 다 보이는 투명한 샘물 같은 청순함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씻은 무 같다든가/뛰는 생선 같다든가/(진부한 말이지만)/그렇게 젊은 날은/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겠는가”(홍윤숙 ‘장식론’중)라고 시인도 말했지만, 그런 싱싱함의 기억은 멀지 않은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칙칙하고 펑퍼짐함뿐이니 여성들은 종종 혼란스럽다.
여성은 나이를 거울을 통해서 먹는다. 어느날 거울 속에서 얼굴에 얼룩이 묻은 것같아 문질러 보니 기미였고, 스커트 허리부분이 너무 불룩해 속옷이 뭉쳐졌나 살펴보니 살이었으며, 무심코 눈에 들어온 쇼윈도우의 ‘웬 늙은 아줌마’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여성들은 등떠밀려 나이를 수용한다. 그래도 좀 버텨볼 생각에 화장도 짙게 해보고, 튀는 색깔의 옷도 입어보지만 “여자가/장식을 하나씩/달아가는 것은/젊음을 하나씩/잃어가는 때문이다”고 위의 시는 친절히 설명한다.
‘주름살과 흰머리’가 연륜의 징표로 존경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늘씬하고 젊은 미남미녀만을 부각시키는 TV가 외모 지상주의를 교리처럼 전파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모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한국에서 10대~40대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를 보면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10명중 7명꼴,“외모 가꾸기는 멋이 아니라 생활의 필수요소”라는 여성이 8명꼴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라는 생각들이다.
‘어떻게 하면 젊고 예뻐 보이나’가 심각한 삶의 과제가 되어버린 풍토에서 중년 여성들이 우아하게 나이들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결국 나이를 껴안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여성들이 외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마음속의 자신의 모습과 거울이 비춰주는 자신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아직도 30·40대인데 거울을 보면 50대, 60대의 ‘늙은 아줌마’가 거기 있으니 나이든 자신의 외모가 싸워서 무찌를 적이 되고 만다. 나이와 싸우느라 젊은 아이들 식으로 치장을 하면 오히려 나이는 더 들어 보이고 좌절감만 남는 경험들을 한다.
나이와의 화해가 필요하다. 50대의 여성을 마음속에 그리며 50대의 나를 보면 나는 얼마나 괜찮은 모습인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예쁜 샘물’에 대한 미련도 버려야 하겠다.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외적 아름다움에 승부를 걸수 있는 것은 30대 정도까지이다.
야마나카 노리오라는 일본의 복식 연구가가 여성이 아름다워지는 법을 연령별로 구분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여성다움이 가장 꽃피는 20대에는 여성다움,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30대에는 목표를 향한 열정에 충실하면 아름다워진다.
이어 40이 넘으면 마음이 얼굴로 드러나기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비결. 40대는 교양, 50대는 원숙함이 여성을 아름답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나이든 내 모습은 잠시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대신 평소 하고 싶던 일이나 취미생활에 심취하다 보면, 그래서 삶에 활기가 돌다 보면 어느날 외모의 싱싱함도 덤으로 얻게 되는 것, 그것이 나이 듦의 지혜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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