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는 북한에서 온 고구려시대 유물과 벽화가 3월초까지 전시되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을 방문하던 차에 고구려를 보고, 꿈꾸고 싶어 그곳을 들른 적이 있다.
발해와 함께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구려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던 차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철옹성이었다. 쇠로 만든 독처럼 견고하다는 뜻을 가진 이 성은 북한 원자로가 위치한 평안북도 영변에 있다.
영변산성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4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약산성과 본성은 고구려 때 쌓았다. 철옹성이라는 명칭은 약산성이 위치한 곳의 지형이 깎아지른 절벽과 가파른 벼랑으로 막혀 있어 험하기가 비할 데 없으며 사방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들이 겹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철옹성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11세기 초 거란의 공격을 수 차례 물리쳤으며 1236년 몽고와 고려 말 홍건적,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을 모두 막아냈다.
철옹성이 바로 김소월의 시 ‘진달래’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철옹성과 진달래의 고장 영변이 지금 국제사회의 초점이 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최근 들어 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에 따라 가동을 중단했던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정보 소식통을 인용, 영변 원자로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관측했다고 전하고 있다.
미 국무부도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은 또 하나의 도발이며 고립을 자초하는 행위"라며, 이는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아직 북한이 원자로를 재가동했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지난 25일 서울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원자로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밝혔기 때문에 정확한 증거가 필요하다.
문제는 북한이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가 그어놓은 ‘금지의 선’을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는 1년 동안 가동할 경우 핵 폭탄 1개 분량의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으며, 재가동에서 재처리까지의 최단 기간은 1년6개월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은 더 이상 외교적 레토릭의 문제가 아니고, 전쟁으로 갈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 때 북한 영변을 폭격, 원자로를 파괴하는 이른바 ‘제한 전쟁론’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 작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한반도에 전쟁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하는 태도는 마치 ‘철옹성’을 사수하듯 미국에 항쟁을 벌이고 있고, 한국은"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코엑스의 고구려전을 보았을 때 당시 아시아의 최강이었던 당나라와 싸우던 연개소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임금(보장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연개소문이 차지한 지위 막리지도 지금 김정일의 군사위원장쯤 되지 않는가. 그러나 연개소문도 끝내 몰락했다.
북한이 NPT를 탈퇴한지 두 달이 넘었건만 아직도 핵 사태에 대해 조금도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북한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며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 없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두어 차례 불면 이제 한반도 야산엔 진달래가 핀다. 4월말께면 영변의 약산 철옹성에도 진달래가 필 것이다. 그 아래에 있는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한반도에 긴장감이 돈다면 그때도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아니오리다"라는 태도로 나갈 수 없다.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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