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출시된 해에 따라 구분해 놓은 것을 와인 빈티지(vintage)라고 한다. 대부분의 와인 스토어에는 빈티지 차트가 구비되어 있어서 와인을 구입할 때 참고로 할 수 있고, 가끔은 책에서 오려낸 빈티지 차트를 지갑 속에서 꺼내어 참고로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탄생 연도가 와인에게 있어서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와인 애호가들이 처음에 빈티지를 따지기 시작했나를 알아야한다.
와인의 맛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옛부터 수확된 포도였다. 어떤 포도로 만드느냐가 와인의 기본 성격을 결정짓기 때문에, 좋은 기후와 토질에서 재배된 포도로 빚은 와인이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날씨이므로 그 해 날씨가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은 와인 구매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포도 농작에 나쁜 날씨가 계속된 해의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얄팍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30년동안 사정은 많이 변했다. 와인 제조기술과 포도 재배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큰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고의 와인기술자는 기상 조건이 나쁜 해에 재배된 포도로도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날씨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력이 전보다 훨씬 덜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빈티지가 전혀 와인의 맛과 상관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같은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와인이라도 해마다 그 맛이 다르고 향이 다르다. 그렇지만 큰 폭으로 성장한 와인 제조기술과 축적된 지식 등으로 인해 빈티지의 차이는 단지 와인의 성격의 차이로만 느껴질 뿐이지 더 이상 좋고 나쁨을 가리는 척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전반적으로 더운 해에 재배된 포도로 빚어진 와인은 과일향이 강하고 힘차게 느껴지고, 전반적으로 쌀쌀한 해에 재배된 포도로 빚어진 와인은 느낌이 가볍고, 직접적이지 않은 매력이 있으며, 그로 인해 더 우아한 맛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와인 빈티지의 척도는 불행하게도 크고 강한 맛의 와인을 좋은 맛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의 기호에 따라 가볍고 우아한 맛의 와인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둘 다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빈티지 차트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이전 해 가을에 수확된 포도로 빚어진 첫 포도주가 출시되자마자 빈티지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와인은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맛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기 때문에, 처음 점수를 좋게 받은 와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질이 떨어질 수 있고, 처음에는 그저 그런 평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놀랍도록 맛과 향이 훌륭한 와인으로 숙성될 수 있다. 따라서 와인 전문가마다 빈티지에 대한 의견이 다르고, 한 번 발표된 빈티지 점수가 수년 후 변경되기도 한다.
참고로, 유명한 와인 전문가 로버트 파커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산 카버네 소비뇽의 경우, 1990년, 1991년은 94점, 1992년, 1993년은 93점으로 점수가 높고, 1994년은 95점, 1995년 94점, 1996년 90점, 1997년 94점, 1998년 85점, 1999년 88점, 2000년 85점이며, 2001년이 96점으로 지난 10년 동안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차트에 따르면 1997년과 1998년 빈티지 점수의 차이가 거의 10점 가까이 되지만, 와인기술자에 따라 오히려 1998년 와인이 더 맛있을 수도 있음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빈티지에 솔깃하는 구매자들의 특성 때문에, 영국 와인 경매의 현 시가를 보면 같은 와인이면서도 빈티지에 따라 2~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 샤토 라피트의 경우 12병에 1996년산은 2,825달러인데 비해 1994년산은 872달러이며, 샤토 마고의 경우 12병에 1995년산은 2,735달러이고 1994년산은 1,110달러이다.
좋은 와이너리는 날씨에 상관없이 해마다 좋은 와인을 생산해낸다. 매년 출시되는 와인의 품질이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와이너리의 와인은 최악의 빈티지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움을 선사할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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