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에 건설된 ‘미션’은 오렌지카운티의 탄생지
3월 ‘제비축제’는 세계적 명성, 훌륭한 사색 공간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이해인의 <봄편지> 중에서 -
일주일 내내, 흐린 하늘에서 비를 뿌리며 뒤늦게 존재를 과시한 겨울은 다음 주에도 한차례 더 위세를 떨치고야 물러갈 모양이지만, 그동안에도 ‘봄’은 오고 있었음을 우리는 뒤늦게 확인한다. 있는 듯 없는 듯 곧장 햇볕 쨍쨍한 여름 날씨로 돌진해 버리는 캘리포니아의 봄은 그래도 무심히 지나치는 출근길 가로수 가지 끝에서 터지기 시작한 꽃망울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들떠 있는 마음과 공연히 계절에 핑계 대는 나른함으로 조금씩 사람들의 무관심의 옷을 벗겨낸다. 그러다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미션에 제비가 돌아왔다는 종소리가 울릴 때쯤엔 이미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년도 더 전에, 스페인에서 신대륙으로 전교와 정복을 겸해 파견된 가톨릭 신부들이 샌디에고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북상하며 곳곳에 원주민과 함께 자급자족하며 사는 공동체로 건설, 결국 캘리포니아 대도시들의 모체가 된 미션은 총 21개를 헤아리는데 그중 7번째 건설된 것이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미션이다. 오렌지카운티의 탄생지라 할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미션은 21개의 미션중 가장 유명하다. 곳곳에 분수가 자리잡은 아름다운 정원에 해마다 3월이면 그 전해 10월에 남미로 겨울을 나러 갔던 수천마리의 제비들이 2000마일을 날아 돌아와 둥지를 틀기 때문으로 미션은 옛날부터 3월 19일, 요셉 성인의 날에 종을 치면서 그때쯤 돌아오는 제비들을 기쁨으로 맞이해 왔다. 올해도 3월 15일과 16일, 또 19일에 연례 ‘제비 귀환 축제’가 마련되어 다양한 오락과 음식, 전시, 공연등이 열릴 예정이다.
샌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은 두 번 건설됐다. 1775년 10월 30일에 페르민 라수엔 신부가 착공했다 8일만에 샌디에고 미션이 인디어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받고 철수했다 그 1년후인 1776년, 프란시스코회 소속 선교사로 멕시코에서 활동하던 후니페로 세라 신부가 다른 2명의 신부, 군인들과 함께 세웠다. 초기부터 번창했던 이 미션에 1777년 최초로 세워진 작은 교회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세라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던 미션내 교회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아직도 ‘세라 채플’이란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1796년에 짓기 시작해 1806년에 완공한, 캘리포니아의 미션 교회중 가장 웅장했던 ‘그레이트 스톤 처치’가 1812년 지진으로 파괴된 채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어른 6달러, 60세 이상 노인 5달러, 3~11세 어린이 4달러인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분수가 중앙에 자리잡은 정원 건너 오른쪽으로 인디언 소년과 마주보고 선 세라 신부의 동상 뒤로 보이는 것이 이 그레이드 스톤 처치의 잔해다. 그 왼쪽 종루에 달려있는 1796년과 1804년에 주조됐다는 크고 작은 4개의 종은 그레이트 스톤 처치에 있던 것으로 지진때 떨어지면서 금이 갔기 때문에 곧 제비가 보이면 듣게될 종소리는 제소리가 아닌데, 현재 네델란드에서 제조중인 새 종이 오더라도 그대로 보존될 예정이다.
입구에서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옛날 우물, 쟁기에 이 지역 원주민인 후아네뇨 인디언들이 살던, 풀을 이어 지은 오두막이 재현되어 있고 미션을 지키던 군인들이 기거하던 병영, 현재 수채화 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서면 미션 건축의 특징인 4각형 건물의 남쪽 면인 비좁은 침실과 서재등 신부들이 기거하던 곳, 부엌과 식당, 손님방들이 나온다. 요즘도 ‘미션 스타일’로 사랑 받는 당시 가구와 집기들이 보존, 재현되어 있다.
그 서쪽면은 박물관. 1970~1974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박물관, 시청각실 및 서점등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은 후아네뇨 인디언, 스페인 점령자, 멕시코 목장주들을 주제로 한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건물 바깥이 바로 캘리포니아에서 최초로 포도주를 만들고, 틀을 이용해 아도비 벽돌을 찍어내고, 사냥한 동물을 가지고 가죽제품을 만들고 그 기름으로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등 오렌지카운티 최초의 산업 단지가 자리잡았던 곳이다. 인디언들이 약초를 재배하던 밭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북쪽면은 이 미션의 주제가쯤 될 ‘제비들이 카피스트라노로 돌아올 때’라는 리온 르네이의 악보와 피아노가 보존된 방과 화장실 등으로 쓰이고 동쪽면은 세라 채플이다. 이 좁고 긴 채플의 금빛 제단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가져온 것으로 350년도 더 됐으며, 체리나무에 게소를 입힌 후에 금박을 했다. 가운데 커다란 예수 수난 그림과 그림으로 된 14처도 모두 스페인에서 온 것들이다.
채플 뒤에 마련된 묘지는 이 미션을 건설한 후아네뇨 인디언과 스페인 사람들, 멕시코 사람들이 다 같이 묻혀 있는 곳. 이어지는 자그맣고 예쁜, 비밀스러워 보이는 분수 정원을 종루가 마감하고 있는 옆으로 그레이트 스톤 처치가 서있다.
4각형으로 배치된 건물들 가운데 무어식 분수가 중심에 자리잡은 반듯한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꽃과 나무를 가져다 화려하게 꾸민 스페인식 정원으로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잘 가꿔 놓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4학년때 미션에 대해 배우고 견학을 오느니만치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기도 하다. 꼭 이 정원만이 아니라 주변 세상의 소음을 벽이 차단하고 있는 10에이커의 대지 곳곳에 소박하고 예술적인 건물과 분수, 아름다운 정원, 벤치가 놓여 있는 미션은 언제나 차분히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김은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