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명작 읽기
“장편소설을 읽고 북 리포트(book report)를 써 오라는 숙제를 내주면 공부 잘하는 학생은 그래도 곧잘 해오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literature)에 대해선 공부 잘하는 학생들도 이해를 깊이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같은 문학인데 왜 장편소설은 그리 힘들어하지 않는데 교과서는 힘들어할까요?…”
11학년 영어 선생님이면서 필자의 강의를 듣는 한 제자의 진지한 질문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은 대부분이 단편소설이다(가끔 장편소설이 있지만 그것은 장편소설의 일부로서 그것도 단순한 일부가 아니고 장편 중에서도 가장 잘된 일부를 따낸 것이다. 예: The Bishop’s Candlesticks by Victor Hugo). 그 이유는 교과서의 한정된 공간(space)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보다 읽기가 어려워서 단편을 읽을 줄 알면 자연히 장편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은 (1)그 시대 배경, (2)그 이야기의 배경, (3)등장인물, (4)이야기의 줄거리 (5)사건과 결말 등을 알면 결론적으로 작가가 말하려는 (6)주제를 파악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지난주의 알라딘의 주제는 법은 겉으로는 왕이 바꾸지만 사실 내적 요소는 거듭남(enlighten-ment)이 바꾸게 한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거듭남에서 온다는 이야기이다(지난주 참고 바람).
단편소설 역시 위의 나열한 6가지 요소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6가지 이외에 아이러니(irony), 패러닥스(paradox)도 많이 사용되며, 장편소설보다 상징(symbols)이 더 많이 쓰여진다. 보통 미국에서 교과서에 실리는 단편소설을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면: The Gift of the Magi by O. Henry, Dip in the Pool by Roald Dahl, The Tell-Tale Heart by Edgar Allan Poe, Clay by James Joyce 등등 다수이다. 영국 교과서에도 이런 수준의 단편소설이 많이 실리는데 그 중에 황순원씨의 ‘소나기’도 실려 있다.
독자들도 ‘소나기’를 읽으셨으리라 믿고 이 단편소설을 예로 들기로 하겠다. 그러나 독자들의 옛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1)그 시대 배경, (2)그 이야기의 배경, (3)등장인물, (4)이야기의 줄거리 (5)사건과 결말, 마지막으로 (6)주제를 따로 나누지 않고 모두 합하여 아주 간단히 요약(synopsis)해 보려 한다(위의 6가지를 구분한 것은 지난 2주일에 거쳐 게재한 알라딘의 분석을 참고 바람).
■ ‘소나기’의 간단한 요약(Synopsis)
건강이 좋지 않아 시골로 온 윤 초시네 증손녀는 개울에 놀러 나왔다가 우연히 그 시골에 사는 한 소년을 징검다리 위에서 만난다. 소녀는 물위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잡으려고도 해보고 조약돌, 조개 등을 갖고 놀기도 하다가, 하루는 심심하다면서 소년에게 산 너머에 가 볼 것을 제시한다.
시골길을 잘 아는 소년은 길이 좀 멀어서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둘은 그 길을 나선다. 가는 길에 그들은 다 낡아버린 허수아비를 만난다. 참새들을 쫓기는커녕 오히려 새들의 휴식처가 되어 있는 광경을 보고 증손녀는 재미있어 하며 노는데 소년은 집에서 아버지 농사를 돕지 않고 놀러 나온 자기 행동에 죄의식을 느낀다. 소년은 가리 꽃, 마타리 꽃, 싸리 꽃을 따서 꽃다발을 만들어 소녀에게 준다. 소녀는 등꽃을 따러 비탈진 곳으로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다쳤을 때 소년이 약을 발라 줘 낫는다. 부잣집 증손녀라지만, 그동안 약 한 첩도 못 먹어보고 앓기만 하다가, 소년이 준 약을 처음으로 발라본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여 원두막에 피신하려 했으나 원두막이 무너져가서, 할 수 없이 수수깡 사이로 들어가 소년이 만들어준 꽃다발로 비를 막는다. 갑자기 오는 소나기의 개울물이 넘쳐나 건널 수 없게 되자 소녀는 소년의 등에 업힌다. 무사히 집에 오기는 했지만 그 이후 소녀의 소식을 모르게 된다. 윤 초시네 댁의 제사에 갖고 간다고 소년의 아버지가 암탉을 잡아간다기에 암탉은 아직 알을 낳으니 수탉을 주라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고 윤 초시네 제사에 다녀오신다. 소녀가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입었던 옷을 입은 채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는 소식을 아버지를 통해 소년이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정도로만 이해를 했다면, 주제는 원체 아픈 아이가 소나기를 맞고 죽은 슬픈 이야기. 혹은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가 될 수 있다. 한번 등에 업힌 일 하나로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가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상징, 아이러니, 패러닥스를 이해할 때 이렇게 간단한 그저 흥미본위의 글이 문학작품으로 변한다.
(7)상징… 소년(검은 얼굴)은 이 글에서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즉 한 개인, 철수나 민호의 이야기가 아니고 한국의 가난한 시골 아이들(new generation)을 상징한다. 소녀는 그냥 소녀가 아니고 윤 초시네 증손녀(하얀 얼굴)라고 등장한다. 소위 가문 있고, 부자, 서울 사람을 상징하는데 그 집은 무너져 가는 가문, 병이 난 아이로… 결국 죽어간다(old generation). 허수아비와 원두막은 옛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old generation의 무기능). 징검다리는 이 아픈 소녀를 연결시켜 주는 희망을 상징한다.
(8)아이러니(Irony)… 한 마디로 사캐즘(sarcasm)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희망의 차이, 우리의 현실과 허식의 차이,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희망의 차이 등을 가끔은 유머로, 또 어떤 때는 비극으로 또는 희극으로 나타낸다. 작가는 장편도 그렇지만 단편 소설에서 이 아이러니를 가장 많이 쓴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러니는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다.
(1)윤 초시네 증손녀-작가는 일부러 무너져 가는 가문의 마지막 증손을 손자가 아니고, 손녀로 등장을 시킨다. 이렇게 마지막 후손이 아무리 무너져 가는 가문이라도 약 한 첩도 못 먹여 보고 앓게 내버려두었다는 아이러니는 기막힌 부자 가문 집에 대한 사캐즘인데, 엎친 데 덮친다고 그 부잣집 증손이 처음으로 처방 받은 약은 아주 가난한, 어른도 아닌 아이에게서이다. 정말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2)허수아비, 원두막-다 낡고 헐어서 제구실을 못한다. 수수깡 사이로 또 꽃다발로 겨우 비를 모면하는 두 젊은 세대! 허수아비의 소극적인 면의 반대로는 독수리가 등장한다. 수수깡의 반대로는 꽃다발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아이러니로 시작하여 패러닥스까지 몰고 간다.
(9)패러닥스(Paradox)
(1)윤 초시네 제사-살아 있는 생명, 증손녀에게 약을 쓸 돈은 없어도, 죽은 생명에게 제사 지낼 돈은 있는 가문 있는 윤 초시네!
(2)암탉 선물-수탉을 선물로 갖고 가라는 아들의 실용적인 조언을 무시하고 알을 낳을 수 있는 암탉을 허세 때문에 대신 선물로 가져간다. 허세가 실속보다 힘(?)이 있는 구세대!
■ 주제: 허세와 법도, 실속보다는 겉치장, 체면을 더 중요시하는 세대를 그 가문(?)의 증손녀를 시켜 노골화시키며 이런 폐습은 없어져야 한다는 글의 끝을 그 집 소녀가 죽는 아이러니로 마지막 장을 내린다.
반면에 가난한 시골집 소년을 마지막에 호도로 비교를 한다. 아시다시피 호도는 겉이 매끄럽지 못하고 소년의 검은 얼굴 같이 보잘것없이 보인다. 그러나 그 실속은 그 겉을 깨면 나온다. 가문의 얼굴 하얀 소녀는 겉만 보기 좋고 속이 없는 대추로, 즉 학연, 지연, 혈연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폐습을 이 소녀의 죽음으로 종말을 지었다.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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